워싱턴 포스트 기자 출신인 저널리스트 샹커 베단텀은 ‘만들어진 신’을 쓴 리처드 도킨스를 만났을 때 이렇게 물었답니다.

“사후에 관한 종교적 믿음 덕분에 인생이 견딜만해진 사람에게서 그 같은 확신이 주는 편안함을 빼앗아야 할까요?”

그러게요. 과학도 좋고 합리성도 좋지만, 생의 어떤 구간은 이야기와 환상, 환시(幻視)의 힘으로 버텨내는 것 아닌가, 종종 생각합니다. 남들은 ‘정신승리’라 비웃을지 몰라도, 때론 입에 쓴 약보다 당의정이 더 유용하기도 하죠. 샹커 베단텀이 쓴 ‘착각의 쓸모’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샹커 베단텀, 빌 메슬러 공저 '착각의 쓸모' /반니

저자들은 말합니다. “사람들이 잘못된 믿음에 매달리는 이유는 때로는 ‘자기 기만’이 실용적이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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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렁에 빠져서 신을 구하지 않기란 어렵다. 자신이 잘 속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면, 그건 당신을 시험할 환경에 놓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착각의 쓸모’ 저자들은 또 이렇게 말하는데요. 괴테의 시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답니다.

“감사할 줄 모른다면, 그대가 옳지 않은 것이고/감사할 줄 안다면, 그대 형편이 좋지 않은 것.”

독문학자 전영애 서울대 명예교수가 운영하는 경기도 여주의 여백서원 오솔길에 괴테의 이 시구(詩句)가 적힌 비석이 놓여 있습니다. 다른 시구에는 많이들 공감하는데 유독 이 시구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많답니다. 잘 이해 안 된다는 이들에겐 굳이 설명하지 않고 “이 구절이 이해 안 되시면 행복한 분이라 좋습니다” 정도로 얼버무린다고 전영애 교수가 최근 낸 에세이집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문학동네)에 적었네요. “형편이 정말 어려울 때 받은 도움이 아무리 작더라도 얼마나 사무치게 감사한 것인지는 그 혹독한 경험이 있어야 알 수 있는 것인데, 그걸 아는 게 꼭 좋은 일만도 아닌 것 같아서다.”

독문학자 전영애 서울대 명예교수가 쓴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 /문학동네

전 교수는 2011년 동양 여성 최초로 바이마르 괴테학회로부터 괴테 금메달을 받았습니다. 학자의 길을 걷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답니다. 대학 입학 무렵 아버지가 실직해 아르바이트를 쉬어본 적이 없고 대학원 다닐 땐 교수로부터 여자가 감히 학문을 하려 한다며 “너는 비극의 씨앗”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는군요. 그렇지만 문학하는 이에게 역경은 세상을 넓게 보는 힘이 되기도 하죠.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이/근심에 찬 여러 밤을/울며 밤을 지새워보지 않은 이/그대들을 알지 못하리, 천상의 힘들이여”라는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구절을 짚으며 그는 “진정으로 감사하고 섭리까지 헤아리는 힘을 우리는 고난을 통해 얻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올바른 목적에 이르는 길은/그 어느 구간에서든 바르다.”

오솔길을 지나는 젊은이들을 반드시 멈춰서게 한다는 또다른 괴테의 시구를 이야기하며 전 교수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의 불편함을 이야기합니다. ‘올바르게 사는 법’을 이야기하는 것이 쿨하지 못하게 여겨지는 세상에서, 그래도 곧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반갑습니다. 곽아람 Books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