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걸 소설집 : 의심의 소녀
강경애, 김명순, 나혜석, 백신애, 지하련 지음|텍스트칼로리|168쪽|1만2000원
소설이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면, 20세기 초 일제 식민지와 근대화의 공간에 태어난 소녀들이 반사하는 풍경이 궁금해진다. 100년 전 남성 중심 문단에서 비주류로 활동하던 여성 소설가들의 다섯 단편을 묶었다. 이 소녀들의 의심은 자신을 억압하는 기존의 낡은 도덕과 가부장제 질서로 향한다. 시대와 갈등하는 여자의 내면은 곧 깨질 것처럼 위태롭다.
나혜석의 단편 ‘경희’는 일본 유학으로 근대화 교육을 받은 미혼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자고로 여자는 동서남북도 몰라야 사는 데 복이 많다”는 사돈댁의 비아냥에, 어머니는 “이젠 공부를 많이 할수록 존대를 받고 월급도 많이 받는다”며 딸을 두둔한다. 경희 또한 조선의 인습에 파묻힌 여자를 경멸하지만, 막상 돈 많고 지위 높은 집으로 혼처를 구해온 아버지에게 흔들린다. 자식 낳고 배부르게 사는 부인네들이 부럽고 대단해 보인 것이다. 경희는 벽에 걸린 큰 거울에 몸을 비추어 보고, 자신이 사람이라는 평범한 사실을 확인한다. “먹고만 살다 죽으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다.” 그는 두 팔을 번쩍 들고 두 다리로 껑충 뛰며 다짐한다. 여자이기에 앞서 사람으로 살겠노라고. 가진 힘을 다해 일하겠다고.
여성 문학의 본류를 페미니즘으로만 가둘 필요는 없을 듯하다. 지하련은 단편 ‘가을’에서 아내와 사별한 남편과 아내 친구와의 미묘하고 모호한 감정을 가을날의 정취와 엮으며 탁월하게 그려낸다. 출판사는 옛날 문학 언어를 현대어로 쉽게 풀어 썼다고 한다. 그럼에도 한국 근대소설의 원형을 간직한 글의 맛을 음미하는 재미가 색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