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의 본질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인지과학자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의 저작을 읽을 때마다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의무감을 갖고 도전한다. ‘괴델, 에셔, 바흐’는 안나푸르나처럼 가파른 험산(險山)이었다. 철학자 대니얼 데닛과 함께 쓴 ‘이런, 이게 바로 나야!’는 오르는 재미가 있는 설악산으로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프랑스 심리학자인 에마뉘엘 상데와 함께 집필한 ‘사고의 본질’(아르테)은 일본의 후지산 정도에 빗댈 수 있겠다. 후지산은 높이에 비해 등반이 어렵진 않고, 막상 가보면 풍경은 소박하다는 평이다. 이 책도 심오한 주제를 768쪽에 걸쳐 다루지만 내용 자체는 교양서 독자가 무난히 따라갈 수 있다. 다만 호프스태터의 다른 책만큼 전개가 현란하지는 않다.

저자들이 주장하는 사고의 본질을 두 단어로 요약하면 범주화와 유추다. 우리는 우리가 접하는 모든 사물, 관계, 개념에 수없이 많은 라벨을 붙인다. 그런 범주화를 통해 그들 사이의 유사성을 알아차리며, 새로운 개념도 유연하게 탐구할 수 있다. 사고의 도약도 그렇게 일어난다.

갈릴레오는 목성과 그 위성의 관계가 지구-달 관계와 비슷하다는 점을 알아차렸다. 목성의 위성과 달을 ‘더 큰 천체 주변을 공전하는 작은 천체’라는 범주로 묶자 거기에 지구도 속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 이는 어린아이가 ‘식물’이라든가 ‘자동차’ 같은 추상적 개념을 습득하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

나는 앞에서 어려운 책과 가파른 산을 한 범주로 묶었다. 독서와 등산을 한 범주로 묶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직접 체험해야 하며, 다른 사람이 대신 해줄 수 없는 일’로 말이다. 위의 짧은 요약이 이 책을 다 설명해준다고 결코 오해 마시길.

미국인과 프랑스인 학자가 함께 쓴 이 책은 영어판과 프랑스어판이 동시에 원본이기도 하고 둘 다 번역본이기도 하다. 심지어 두 판본은 내용도 조금 다르다. 사례들을 각각의 언어권 독자들이 더 이해하기 쉽도록 다르게 든다. 저자들은 한국어 번역본도 그렇게 고쳐달라고 요청했고 만족스럽지 않은 부분은 재번역까지 요구했다고 한다. 장강명·소설가

/아르테 장강명 에세이 '책, 이게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