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무더위, 안녕들하십니까?
기본소득 문제로 연일 정치권이 시끄러운 가운데 토마 피케티의 책 ‘사회주의 시급하다’(은행나무)가 나왔습니다. 기본소득에 대한 각양각색의 논의를 담은 책들이 그간 꽤 나왔죠.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셉 스티글리츠 ‘불만시대의 자본주의’(열린책들), 2019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에스테르 뒤플로와 아브하지트 바네르지의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생각의힘)… 이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양지호 기자가 소개합니다.
[“모두에게 1억6000만원씩” “선진국에는 일자리가 더 중요”]
항상 궁금했습니다. 왜 어떤 사람은 치즈를 고소하다 하는데 어떤 사람은 역겹다 할까요? 어떤 사람은 삭힌 홍어를 별미라 여기는데 누군가에겐 견딜 수 없이 힘든 음식인지. 미국 발효전문가가 쓴 ‘음식의 영혼, 발효의 모든 것’을 읽고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답은 문화에 있더군요.
[김치와 치즈 사이… ‘발효’는 당신의 뿌리를 알려준다]
우주 이야기로 화제를 돌려 볼까요?
“결국, 나는 한 번도 ‘코스모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못했다.”
심채경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의 책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이 문장이었습니다. 개정번역판이 나올 때마다 ‘코스모스’를 새로 사지만 결국은 완독하지 못한다는 심 연구원은 완독을 저해하는 요소 중 하나를 이렇게 짚습니다. “우주에 대한 찬탄의 정서가 끊이지 않는 배경음악처럼 책의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계속 흐른다.” ‘우주적 깨달음’이라는 퍼즐의 첫 조각을 막 집어들었는데 누가 와서 여러 조각을 촤라락 맞춰준 것만 같아 화가 나서 ‘저기요, 제 감동은 제가 알아서 느낄게요’ 삐딱선을 타 버린다는 고백에서 킥킥대며 웃었습니다. 저는 ‘코스모스’를 읽을 엄두도 내지 못했거든요.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과 영화 제작자 앤 드루얀의 딸 사샤 세이건이 쓴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문학동네)가 나왔습니다. “부모의 삶에서 영감을 받은 글쓰기를 하고 있다”는 저자 소개를 보고 ‘그냥 금수저 아닌가’ 편견을 가졌지만 반듯한 문장들을 읽다 보니 삐딱한 마음은 곧 사라졌습니다. “부모님은 아주 복잡한 개념까지도 나에게 설명해주려 애썼고 그것도 절대로 무시하는 태도 없이 지적이고 다정한 존중심을 보여주며 그렇게 했다. 나를 마치 작은 아이의 몸 안에 갇힌 교수처럼 대했다.”
비록 ‘코스모스’는 읽지 못했지만 아버지가 알려준 우주를 문학적으로 풀어나가는 사샤의 책 덕에 우주의 시적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해와 달, 별까지의/거리 말인가/어쩌겠나 그냥 그 아득하면 되리라”는 박재삼의 시구처럼 ‘코스모스’란 까마득하게 모호하여 신비로운 것 아니던가요? 곽아람·Books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