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8|조지 손더스 지음|민은영 옮김|문학동네|64쪽|1만원
“독자께, 우선 이 말부터 할께요. 내가 글짜를 틀리개 쓰더라도 이해하새요.” 소설의 첫 문장이다. 소설은 여우가 쓴 편지이기에 그렇다. 링컨 대통령을 모티프로 쓴 장편소설 ‘바르도의 링컨’으로 맨부커상을 받은 조지 손더스는 짧은 소설의 화자로 여우를 내세우며 일부러 맞춤법이 틀리는 글자를 썼다. 여우가 인간의 언어를 귀동냥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여우 8’은 주인공 여우가 스스로 지은 이름. 해가 지고 어두워진 세상에서 여우는 무리에게 돌아가지 않고 인간의 집을 기웃거렸다. 창가에 비친 사람 모습과, 창문을 넘어 들려오는 음악 같은 언어에 홀딱 반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사랑을 담아 아기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뒤 입술을 아기 머리에 대며 ‘굿나이트 키스’를 했다. 여우는 그 모습을 보는 일이 신났다. 여우도 새끼에게 사랑을 보여줄 때 같은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여우 8은 친한 친구 여우 7과 쇼핑몰에 먹을 것을 구하러 가면서 인간의 다른 모습과 마주한다. 잡힌 고양이들이 있는 반려동물 가게에서 느꼈던 의아함은 곧 공포로 변했다. 인간들은 여우 7을 장난삼아 꾀어내 잔인하게 죽이고선 웃어댔다. 즐겁다는 듯 손뼉을 치면서. 사건을 겪은 뒤로 여우 8은 인간에게 얼씬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 아빠가 되려 할 때 과거의 참혹했던 경험이 진짜 인간의 모습인지 묻는 편지를 쓴다. “이제는 아기들이 곧 태여날 테니까 그런 기분을 느끼고 십지 안아요.”
아이 눈을 가진 여우 입을 통해 인간성을 묻는 소설. 여우의 천진한 위트 속에서 더럽고 너절한 인간의 민낯을 발견할 때 독자는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다. “좀 차캐지려고 노력카새요.” 그의 충고대로 말과 행동을 점검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