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보라의 '당신을 이어 말한다'/동아시아

이길보라의 책 ‘당신을 이어 말한다’(동아시아)는 청각장애인 어머니가 하지 못한 얘기를 이어서 말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수화로 말하는 청각장애인 부모에게 태어나 당차게 살아온 다큐 감독의 시선 및 소소한 일상을 그린 에세이집이다. 책을 읽어내려 가면서 내 인생을 바꾼 책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50대 중반이고, 새로 시도할 일도 별로 없으며, 그저 내가 했던 일들을 자랑하는 끝없는 되새김질로 남은 시간을 소모하면서 지낼 확률이 많은 사람이다. 앞으로 누구를 보고, 누구와 얘기하고, 어떤 문제를 고민할 것인가, 책은 이런 질문을 하게 해주었다.

책을 읽으면서 수화라는 또 다른 언어와 문법의 세계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일본의 장애인 수당이 문화 소비에 대한 선택권을 직접 준다는 점에서 매번 장애인 카드를 직접 꺼내서 장애인임을 확인받아야 하는 우리의 제도보다는 낫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여성으로서 겪게 되는 일들, 그가 네덜란드 유학 시절 배웠다는 성과주의와 거리를 두고 일하는 방식 등 소소한 낯선 것에 대한 경험도 재밌었다. 그렇지만 이 책의 백미는 스스로를 ‘아티비스트(아트+액티비스트)’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글쓰기로 서로 모여 위로와 용기를 주고 책을 만들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후반부다.

“글방을 다닌다는 것은 때때로 복잡한 마음이 드는 일이었다. 글을 함께 쓰고 서로의 글에 대해 합평하는 사람과 공간을 사랑하게 되는 일이었고 동시에 자신의 글과 그에 대한 합평을 받아들이면서 거리를 두는 일이기도 했다.”

이슬아 작가를 비롯한 그의 글쓰기 동료들이 글을 매개로 출간을 준비하며 서로를 격려하는 얘기는 감동적이다. 부끄럽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치열하게 글에 대한 고민을 누군가와 나누지 못했다. 그의 ‘로드스쿨러’ 시절, 탈학교 운동 하는 사람들로부터 얼핏 소문으로 들었던 이길보라가 성장하여 당당하게 살아가는 얘기는 아름답다. 메이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눈에는 안 들어올지 몰라도, 빡빡한 한국에 작은 균열이라도 만들기 위해 살아가는 아티비스트들의 미세한 강렬함은 삶을 즐겁게 느끼게 해준다. 덕분에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