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18년부터 예산 45억원을 들여 오는 9월 오픈을 추진하는 출판유통통합전산망(출판전산망) 사업이 수렁에 빠졌다. 개발은 지지부진하고, 출판사와 유통 업체들의 참여는 부족하다. 힘을 합쳐 이를 개선해야 할 출판계와 정부는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다. 출판 분야는 영화·공연계와 달리 판매 부수를 추적하는 통합 전산망이 없어, 저자가 자기 책이 몇 권 팔렸는지도 알기 어려운 유통 시스템이 계속되고 있다.

◇도입 4개월 앞두고 ‘시연’도 못 한 사업 설명회

지난 26일 서울 마포에서 열린 출판전산망 사업 설명회. 현장에 참석한 50여 명의 출판계 인사 앞에서 출판전산망 프로그램 개발사(社)인 바이브컴퍼니의 S 부사장이 난데없이 코로나 유행으로 늘어난 검색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전산망 사업과 전혀 상관없는 강연이 진행된 이유는 시스템 개발이 끝나지 않아 시연(試演)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코로나로 캠핑, 쿠팡, 택배 같은 검색어가 늘었다”는 내용의 강연이 예정 시간 40분을 넘기자 한 현장 참석자가 언성을 높이며 공개 항의했다. “전산망 설명 들으러 왔으니 쓸데없는 강연은 끝내달라.”

출판전산망은 도서 생산·유통·판매 전 과정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출판사와 서점 등에 제공하는 사업이다. 그간 책 판매량을 알려면 출판사는 각각의 서점과 도매상 정보를 따로 집계해야 했다. 도매상 등에 위탁 판매를 맡긴 책은 재고량 파악조차 어려웠다. 신간이 나오면 개별 서점에 이메일을 따로 보내 출간 소식 및 서지 사항을 전달해야 했다. 전산망은 이를 ‘원스톱’으로 해결하자는 취지에서 나왔다.

그러나 문체부 산하 기관인 한국출판문화진흥원이 주도하는 전산망은 오는 9월 때맞춰 개시할 수 있을지 우려가 큰 상황이다. 시스템은 3년째 구축 중이다. 교보·예스24·알라딘 등 대형 서점은 참여하기로 확정했지만 영풍·인터파크·리디북스와 도매상 ‘북센' 등은 참여 여부가 확실하지 않다. 출판계 최대 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는 “민간이 주도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며 전산망 사업에 불참하고 있다.

◇출협·문체부 갈등, 전문가들 “대화 나서야”

최근 장강명 소설가는 SF 전문 출판사 아작이 인세를 제때 지급하지 않고 판매 내역을 성실하게 알리지 않았으며 작가에게 알리지도 않고 오디오북을 제작·판매했다고 공개적으로 항의했다. 장 작가는 “통합 전산망에 가입하지 않은 출판사와는 계약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전산망이 도입되면 이런 일부 출판사의 부적절한 처신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출판사 입장에서도 도서 판매 데이터가 투명하게 공유되면 재고 관리가 용이해지고 책 기획에도 참고할 자료가 생긴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출협과 문체부가 주도권을 두고 갈등하면서 전산망을 둘러싼 잡음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출협은 ‘민간 주도’를 주장하면서 협조하지 않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중견 출판사 대표는 “민간 주도가 필요하다면 출협 차원에서 기금을 조성해 유통 전산망을 만들면 될 일”이라며 “출협은 나랏돈은 받아 쓰면서 그에 대한 통제는 받지 않겠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했다. 백원근 책과사회 연구소장은 “정부와 출판계가 대화에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출판계 일각에서 이번 통합전산망 사업이 반쪽짜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출판사가 자사 책 판매량을 확인할 수 있을 뿐 영화 통합전산망처럼 전체 도서 판매량은 일반에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저자는 “영화 통합전산망과 비교하면 후진적”이라며 “판매 정보를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고 했다.

출판진흥원 관계자는 “9월 정식 운영이 시작되면 출판사, 서점 등의 가입이 늘어나며 전산망 운영에 지장이 없을 것”이라며 “베스트셀러 판매 부수는 향후 법제화를 통해 공개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