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VP 머신
벤 린드버그·트래비스 소칙 지음|김현성 옮김|두리반|576쪽|2만3000원
노력으로 신체와 재능의 한계를 어디까지 극복할 수 있을까. 미국 메이저리그(MLB)의 경구 “노새의 엉덩이를 수없이 걷어찬다고 경주마가 되진 않는다”(빌리 마틴)는 재능이 노력을 압도한다는, 스포츠계의 상식이다. ‘MVP 머신’은 이 통념을 반박하는 책이다. 첨단 장비를 동원한 ‘똑똑한’ 노력을 계속하면 재능을 뛰어넘는 위대한 선수가 나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때리면 잘한다'고 믿으며 구타로 얼룩진 한국 스포츠계라면 뜨끔할 책이다.
저자들은 MLB 판에서 잔뼈가 굵은 스포츠 전문지 기자. 이들은 우완투수 트레버 바워(Bauer·30)에게 주목해 이 책을 썼다. 바워는 지난 시즌 MLB 신시내티 레즈에서 뛰면서 평균 자책점 1.73으로 사이영상을 받았다. 최고 투수로 발돋움한 그는 올 시즌 MLB 역대 최고 연봉 4000만달러(약 480억원)를 받고 LA다저스에서 뛴다. 책은 그가 사이영상을 받기 전인 2019년 나왔다. 일종의 예언이 들어맞은 셈이다.
메이저리그 전문가들은 한때 바워를 이렇게 평가했다. “하부 리그인 트리플A와 더블A까지 통틀어 바워보다 운동 능력이 떨어지는 투수는 없다.” 키 185㎝, 몸무게 92㎏으로 체격은 류현진, 맥스 셔저, 저스틴 벌랜더와 비교하면 평범하다.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아 근력 운동을 해도 근육은 잘 붙지 않고, 구속을 좌우하는 팔 스윙 속도는 투수 평균에도 한참 못 미친다.
어려서 야구를 시작한 바워는 기존부터 보수적인 미국 야구계의 통념을 깨는 훈련을 했다. 리틀 야구 시절부터 공인구보다 무게가 더 나가는 ‘웨이티드 볼’을 던졌다. 어깨 부상 위험이 크다는 편견으로 잘 던지지 않는데, 과학적 근거는 없다며 진행했다. 비주류 훈련법인 공을 최대한 멀리 던지는 ‘롱 토스’, 짧은 거리에서 전력투구하는 ‘풀 다운’도 함께 진행했다. 덕분에 평균 구속 150㎞가 넘는 직구를 던지며 2011년 프로 지명을 받지만, MLB 적응은 순탄치 않았다. 하부 리그를 오가며 자리를 잡지 못했다.
바워는 포기하지 않았다. 첨단 기술의 힘을 빌렸다. 몸에 장비를 부착하고 3D로 자신의 투구 동작을 분석했다. MLB로 오게 해준 투구 자세를 변경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직구 평균 구속이 143㎞까지 떨어졌지만 자세 교정을 계속했다. 이제 그는 최고 구속 160㎞에 달하는 직구를 뿌린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다른 선수 기술도 ‘훔쳤다’. 그는 2014년 대당 600만원이 넘는 고속 카메라를 장만했다. 초당 800장 이상을 고해상도로 촬영하는 카메라 앞에서 마법은 사라진다. 투수들이 공을 어떻게 잡는지, 공이 손을 떠날 때는 어떤 모습인지, 회전축은 어디 생기는지 모두 포착한다. 타석 앞에서 20㎝ 이상 횡으로 이동하는 바워의 결정구 슬라이더는 코리 클루버, 마이크 클레빈저, 마커스 스트로먼 세 투수의 투구를 분석해 2018년 탄생했다. 신기술과 집념이 합쳐지자 2019년에는 사이영상 후보로 거론됐고 2020년 결실을 봤다. 저자는 바워가 MLB에서 이 기기를 본격적으로 활용한 첫 선수라고 지적한다. 이제 고속 카메라를 쓰지 않는 구단을 찾기가 힘들다.
바워가 핵심 사례로 등장하지만 다른 분야에서도 기술 발전은 야구를 바꾸고 있다. 타구의 발사각, 투구의 회전수, 배트의 스윙 속도 등 다양한 데이터가 선수 육성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살핀다. 타자 무키 베츠, J.D. 마르티네스도 이런 신기술에 힘입어 타격 자세를 교정, 더 큰 성공을 거뒀다.
저자들이 선수 훈련과 육성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머니볼(Moneyball)’로 대표되는 트렌드가 막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전 구단이 저평가된 우량 선수를 찾기 시작하면서 ‘진흙 속 진주 찾기’ 효율은 떨어지고 말았다. 이제 육성이 더 중요해졌다. 일견 당연해보이는 소리지만 ‘쓰레기가 들어가면 쓰레기가 나온다’를 신봉하는 미 스포츠계에서는 혁신적 주장이다. 저자들은 “첨단 기술과 더 세밀한 정보로 선수를 육성하는 ‘베터볼(better ball)’의 시대로 전환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저자들은 이런 야구판의 변화가 일터에서도 일어날 것이라고 본다. 이미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기업은 데이터 분석에 나섰다. ‘근로 시간이 많은 직원이 적게 일한 사람보다 더 생산적이지는 않다’ ‘개별 면담을 하는 중간 관리자가 더 성공한다’ 같은 결론도 얻었다고 한다. 저자들은 “주어진 정보를 최대한 활용하면 변화의 파도에 휩쓸리기보다는 파도를 타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