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주홍씨가 쓴 '노가다 칸타빌레' 표지 일러스트. /시대의 창

#1. “내가 생각하는 노가다 판의 가장 큰 매력은 담백하다는 점이다. 회사 다닐 땐 내 노력보다 결과가 안 나와 속상할 때도 있었고, 내 노력보다 결과가 잘 나와 머쓱할 때도 있었다. 노가다 판은 일한 만큼, 딱 그만큼 결과가 나온다.”

지난 15일 출간된 송주홍(34)씨의 책 ‘노가다 칸타빌레’(시대의창)는 열흘 만에 중쇄를 준비 중이다. 30대 남성이 기자 일 그만두고 4년째 공사장 잡부로 일하며 겪은 이야기를 담았다. 박성훈 시대의창 편집장은 “30대를 겨냥하고 냈는데 40대 남성이 많이 본다. 노동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는 평이 많다”고 했다.

#2. “유독 밤새 빈틈없이 관측한 날은 파킹(망원경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일)하는 그 순간이 가슴 끝까지 뿌듯하다. 너무 졸려서 미각이 거의 마비된 상태로 밥을 국에 말아 후루룩 한 그릇 비우고는, 관측자 숙소의 암막 커튼이 주는 그 따뜻한 어둠 속에서 죽음처럼 잠들고 싶은, 관측하기 딱 좋은 날.”

다양한 직업 에세이 표지.

지난달 나온 심채경(39)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 에세이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문학동네)는 한 달 만에 1만부 팔렸다. 일에 대한 열정과 여성 과학자로서의 삶에 대해 적었다. 박영신 문학동네 부장은 “에세이 주 독자층인 20~40대 여성뿐 아니라 과학에 흥미가 많은 남성들의 호응도 좋다”고 했다.

누구나 가슴에 사표를 품고 산다지만 요즘 서점가에선 ‘퇴사 에세이’보다 ‘직업 에세이’가 강세다. 예전엔 의사, 변호사 등 사람들이 선망하는 소위 ‘전문직’ 종사자들의 책이 지배적이었지만 2~3년 전부터는 돈과 권력이 보장되지 않아도 애정을 갖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인기 있다. 편의점주 봉달호씨가 쓴 ‘매일 갑니다, 편의점’(시공사)이 대표적. 2018년 9월 출간돼 4쇄를 찍었다. 엄초롱 시공사 과장은 “은퇴 후 편의점 운영하려는 사람들까지 독자층으로 흡수돼 성별 가리지 않고 20~50대가 두루 본다”고 했다. 20대 여자 경찰관 원도가 쓴 ‘경찰관 속으로’(이후진프레스)는 저자가 독립 출판물로 낸 것이 입소문이 나 출판사서 다시 나왔다. 현장 경찰관의 내면 이야기를 진솔하면서도 감각적으로 담아냈는데 1만3000부 팔렸다. 뉴욕의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는 이미연씨의 ‘카운터 일기’(시간의흐름), 20년 넘게 아파트 관리소장 일을 한 김미중씨가 쓴 ‘따로, 또 같이 살고 있습니다’(메디치) 등도 꾸준히 팔리고 있다. 최근엔 ‘사서의 일’(책과 이음), ‘아랍 에미리트로 떠난 간호사’(인간사랑) 등의 책도 나왔다.

현장 경찰관의 땀과 눈물을 담은 원도의 ‘경찰관 속으로’ 표지 일러스트. /일러스트레이터 변영근

직업에 대한 책이 인기 있다 보니 제철소 출판사는 특정 직업군 인터뷰집 ‘일하는 마음’ 시리즈를 론칭했다. ‘미술하는 마음’ ‘문학하는 마음’ ‘출판하는 마음’ ‘다큐하는 마음’ 등이 나왔고 ‘연극하는 마음’ ‘번역하는 마음’ 등이 곧 나온다. 김태형 제철소 대표는 “‘어른들을 위한 직업 안내서'라는 콘셉트로 기획했다. 사람들이 타 직군에 대해 갖는 동경과 궁금증을 해소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마음산책은 가수 요조의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소설가 천운영의 식당 운영기 ‘쓰고 달콤한 직업’ 등 ‘직업’ 시리즈를 연이어 내고 있다. 정은숙 대표는 “독자들이 저자의 일에 대한 태도를 배우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고 싶어하더라”고 했다.

직업 에세이 봇물은 소셜미디어나 ‘브런치' 같은 글쓰기 앱의 유행으로 ‘저자 진입 장벽’이 낮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출판평론가 한미화씨는 “처음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 뭔가 써서 출판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이 타 직군들은 잘 모르는 자기 일 이야기다 보니 초보 저자들의 직업 에세이가 꾸준히 나온다”고 했다. 뚜렷한 ‘시장’이 있다는 것도 큰 요인이다. 한미화씨는 “중·고등학교 교육에서 ‘진로 독서'가 중시되는데 변호사·의사 등에 대한 책은 많지만 그 외의 다양한 직업에 대한 책은 여전히 공백이 많다”고 했다.

편의점주 봉달호씨가 쓴 '매일 갑니다, 편의점' 일러스트/시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