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스무 번
편혜영 지음|문학동네|232쪽|1만3500원
내달리는 단문들, 쌓이는 의문과 긴장감. 편혜영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한국형 서스펜스’를 신작 소설집에서도 어김없이 보여준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발표한 단편 가운데 성격이 비슷한 여덟 편을 골랐다.
표제작인 ‘어쩌면 스무 번’은 병든 아버지를 모시고 시골 외딴 집으로 이주한 부부의 이야기다. 그 시골은, 푸근함을 가장한 낯설고 거친 공간이다. 동네 사는 찜질방 주인은 사적인 질문을 거침없이 던지고, 사이비 종교 전도자들은 시도 때도 없이 초인종을 누른다. CCTV와 자물쇠를 설치하지 않으면 짐승과 짐승 같은 사람들로부터 언제든 공격받을 수 있다. 아픈 아버지의 발작은 계속되고, 부부는 점점 미쳐간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의심은 확신이 된다. 이 부부는 원래 미친 사람들이었다고.
소설 속 주인공들은 증상에 시달리지만, 그 원인을 뚜렷하게 진단하지 못한 채 부유한다. 단편 ‘호텔 창문’의 화자는 불량 청소년이었던 사촌 형에게 목숨을 빚지고 살아간다. 과거 자신을 구박하기만 했던 사촌형이 왜 물에 빠진 자신을 살리고 익사했는지 영영 알 수 없기에, 그는 죄의식과 부채감으로 종종 숨이 막힌다. ‘홀리데이 홈’에서 아내는 군인이던 남편이 군복을 벗어야만 했던 불법 행위를 짐작만 할 뿐, 분명하게 알지 못하면서 관계를 유지한다.
편혜영은 “삶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게 끌린다”고 밝혔다. 살다 보면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알지도 못하는 일에 불쑥 펀치를 맞기도 한다. ‘살아 있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어쩔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살아야 하는 게 인생이란 걸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