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쓴 첫 책이 나왔습니다.”
15년 차 출판 편집자인 이연실 문학동네 국내5팀장은 최근 소셜미디어에 환호하며 적었다. 그동안 100여 권의 책을 만들었지만 직접 쓴 책을 세상에 내놓은 건 처음이다. 제목은 ‘에세이 만드는 법’(유유). “‘진정성'의 전쟁터인 에세이 시장에서 불량품 아닌 뇌관을 준비해 재미와 감동이라는 도화선을 독자의 마음에 정확하게 연결해 불꽃을 터뜨리는 편집자의 일”에 대한 책이다.
저자의 ‘그림자’로 여겨지며 자신을 드러내는 걸 꺼렸던 출판 편집자들이 속속 책을 내며 ‘저자’로 데뷔하고 있다. 주로 책 만들고 저자 만난 후일담, 일하며 느끼고 배운 것들에 대한 소회를 담은 ‘직업 에세이’다. 인문서 전문 출판사인 글항아리의 이은혜 편집장이 지난해 낸 ‘읽는 직업’(마음산책)의 부제는 ‘독자, 저자, 편집자의 삶’. 저자들을 향한 경외, 두꺼운 책을 외면하는 독자들에게 보내는 소망, 직업에 쏟는 열정을 담았다. 출간 한 달 만에 3쇄를 찍었다.
고미영 이봄 대표, 김수한 전 돌베개 편집주간, 박활성 워크룸프레스 대표, 신승엽 1984Books 편집장, 윤동희 북노마드 대표, 전은정 목수책방 대표 등 편집자 여섯 명이 함께 쓴 ‘편집자의 일’(북노마드)은 ‘책 만드는 법’에 대한 책. 출판인을 타깃으로 한 전문적인 내용인데도 초판 2000부가 다 팔렸다. 윤동희 북노마드 대표는 “독립서점서 특히 많이 팔린다”고 했다.
편집자가 쓴 편집자의 일에 대한 책이 반응이 좋다 보니 유유 출판사는 경력 20년 가까운 편집자들을 저자로 섭외해 아예 8권짜리 시리즈를 기획했다. 현재 ‘에세이 만드는 법’ 외에 ‘문학책 만드는 법’(강윤정) ‘경제경영책 만드는 법’(백지선) ‘역사책 만드는 법’(강창훈) ‘실용책 만드는 법’(김옥현) ‘인문교양책 만드는 법’(이진) 등 모두 6권이 나왔다. 조성웅 유유 대표는 “출판계 후배들을 위해 만든 책인데 직업의 간난신고(艱難辛苦)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서인지 일반 독자들이 많이 사 보더라”고 했다.
편집자가 저자로 주목받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책 만드는 과정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책 만드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한 TV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2019) 등이 인기를 끌면서 ‘편집자의 일’이라는 소재가 하나의 콘텐츠로 주목받고 있는 것. ‘편집자 분투기’(2004), ‘스무 해의 폴짝’(2020) 등을 쓴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내가 처음 책을 냈을 때만 해도 ‘편집자가 무슨 책을 쓰냐’는 말을 들었고 저자에게 누가 될까 조심스러웠는데 최근 몇 년 새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뒷이야기 서사’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점점 높아진다. 저자를 만나 책을 쓰게 된 과정을 듣고 싶어하던 독자들이 이제 편집자의 이야기도 듣고 싶어한다”고 했다.
편집자들도 저자로 나서는 일에 적극적이다. 소셜미디어 시대가 오면서 ‘눈에 띄게’ 움직여야만 자신이 만든 책을 홍보할 수 있기 때문. 이연실 문학동네 팀장은 “내가 편집한 책을 모두 샀다는 독자를 만난 적이 있는데 알고 보니 소셜미디어를 팔로 하는 분이시더라. 책 쓰는 일도 소셜미디어 활동과 마찬가지로 책 홍보에 효과가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했다. 1년 만에 자신이 편집한 책을 총 100만부 팔아 유명해진 일본 편집자 미노와 고스케는 트위터 팔로어 20만명을 둔 인플루언서이기도 하다. 그는 저서 ‘미치지 않고서야’(21세기북스)에 이렇게 썼다. “편집자는 ‘구로코’(들러리)라는 말은 대부분 자신이 피를 흘리지 않기 위해 내뱉는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저자는 피를 흘리고 있다. 그런데 그 뒤에 서 있는 사람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 물건 따위 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