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폭스 갬빗
이윤하 지음|조호근 옮김|허블|전 3권|각 권 1만7000원
나인폭스 갬빗, 우리말로는 ‘구미호 전략’이다. 우주 제국 장교 ‘체리스’가 ‘구미호 장군’과 함께 광활한 우주를 누비는 이 SF 소설은 한국의 구미호 설화를 모티브로 한다. 총 3부작인 시리즈는 최고 권위의 SF 문학상인 휴고상 후보에 오르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저자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자랐고 미국 코넬대 수학과를 졸업했다. 우주선에서 스테이크만 먹는 백인 중심의 SF 소설에 질려 ‘양념한 양배추 절임’(김치)을 먹고 채소에 환장하는 종족을 등장시켰다.
초반부는 머리가 지끈거릴 수 있으나, 그 구간만 통과하면 여태껏 본 적 없는 독창적인 세계관을 만날 수 있다. 소설 속 우주 제국은 6개의 분파 ‘육두 정부’가 지배한다. 이 세계에선 어떤 역법(曆法)을 사용하는지에 따라 마법처럼 물리학 법칙을 바꿀 수 있다. 예를 들면 10진법인지 8진법인지, 음력을 쓰는지 양력을 쓰는지에 따라 공격 무기와 기술이 달라지는 셈이다.
소수 민족 출신의 장교인 체리스는 불온한 역법을 퍼뜨리는 이단을 제압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체리스는 뛰어난 전략가지만 반역을 저지르고 감옥에 갇힌 ‘구미호 장군’을 이용해 적에게 맞서려 한다. 그러나 구미호 장군의 영혼을 흡수한 체리스에겐 ‘적군의 목숨 또한 우리와 동등한 값어치를 지닌 목숨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싹트기 시작한다. 육두 정부가 섬길 가치가 없는 주인임을 깨달은 그는 반역을 일으키고 민주 국가를 세우려 한다. 제국의 충직한 군인이 되고 싶어하던 주인공의 변화를 통해 소수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녹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