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아 앤 휴렛의 '후배 하나 잘 키웠을 뿐인데'.

후배 하나 잘 키웠을 뿐인데

실비아 앤 휴렛 지음|서유라 옮김|부키|296쪽|1만6000원

“직장 내에서 ‘내 사람’을 키워라.”

미국 경제학자이자 리더십 전문가인 저자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저자는 “싹수 있는 후배의 ‘스폰서’가 돼라”고 말한다. 저자가 정의한 스폰서-프로테제(protéger·피후원자) 관계는 우리에게 익숙한 ‘멘토-멘티’ 관계와 다르다. 역동적이며 쌍방향적이다. 멘토에게는 부담만 있고 이득은 없지만 스폰서십은 상호 이익을 추구하는 호혜적 관계다. 스폰서가 프로테제에게 투자하는 만큼, 프로테제는 스폰서에게 보답해야 한다. 멘토십과 달리 스폰서는 프로테제를 공개적으로 지원하며, 지지하고, 보호한다. 프로테제는 스폰서에게 성과와 능력, 충성을 바친다.

‘라인’을 만드는 조직 문화는 경계해야 할 것 아니었던가? 개인주의 문화가 뿌리 깊은 서양에서 이런 주장이 나오다니 낯설지만 저자는 ‘내 사람 만들기’의 이점을 통계로 증명한다. 그는 미국 글로벌 기업 소속 직원들의 인터뷰와 설문조사를 통해 ‘어떤 사람이 승진의 사다리에 빨리 올라타는가’를 수치화했다. 10년간 연구 끝에 얻은 결론은 놀라웠다. 관리자급으로 올라가면 업무 성과는 성공가도에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키우는 후배’가 있느냐 여부, ‘그들을 통해 어떤 부가가치를 얻었는가’가 중요했다. ‘내 사람’이 있는 고위급 관리자의 승진 비율은 키우는 사람이 없는 경쟁자들보다 약 53% 높았다. 프로테제가 있는 신입 관리자들이 핵심적인 프로젝트를 맡을 확률은 그렇지 않은 동료들보다 167% 높았다. 충성스러운 보좌관이 된 프로테제가 스폰서에게 더 높은 부가가치를 지닌 일에 집중할 여유 시간을 벌어주고, 최고 경영진에게 능력을 입증할 기회를 줬기 때문이다. 여성과 유색인종은 백인 남성과 동등한 성과를 내도 특정 시기가 되면 유리 천장에 부딪혔다. “프로테제를 위해 기꺼이 타석에 등판하고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서 그들을 끌어올려 주는 존재가 있었다면 뭔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연구 결과 남성은 여성보다 스폰서를 갖고 있을 확률이 46%나 높았고, 백인은 스폰서가 있을 확률이 유색인종보다 63% 높았다.

스티브 잡스(오른쪽) 애플 창업자와 팀 쿡 CEO의 관계처럼 조직 내 후배를 키우는 스폰서십은 선후배 양쪽 모두에게 득이 되는 호혜적 관계다. 저자는“후배에게 당신의 가치관을 공유하고 그들의 열정과 야망에 불을 지펴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라”고 조언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저자는 “효과적인 스폰서십을 위해선 성향이나 관점, 성별, 나이, 민족성, 경험, 배경 면에서 당신과 ‘다른’ 인재를 찾아 키우라”고 조언한다. 대표적인 예가 스티브 잡스다. 잡스는 한때 애플에서 쫓겨났다. 그가 리더십을 보완하기 위해 영입한 펩시 CEO 출신 존 스컬리는 잡스와 계속 반목하다 결국 그를 쫓아내고 고소했다. 1997년 애플에 복귀했을 때 잡스는 다음 프로테제를 찾는 데 신중을 기했다. 고압적이고 무례한 자신과 전혀 다른 성향의 팀 쿡을 키웠다. 팀 쿡은 조직을 능률적으로 운영하며 잡스의 아이디어를 극대화했다. 잡스 사후에도 애플을 혁신적인 기업으로 유지하고 있다.

프로테제와 효과적인 동맹을 맺기 위해선 최악의 상황에서도 어깨를 두드리며 전폭적 지원을 퍼부어야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거래’다. 저자는 “프로테제가 성과를 낸다 해도 검증을 멈추지 말라”고 조언한다. “성과와 기술 면에서 결정적 실수를 세 번 이상 저지른다면 눈감아 줄 필요가 없다. 신뢰할 수 없는 인물로 밝혀진다면 미련 없이 해고해야 한다.” 미투 시대, 스폰서십이 부적절한 관계로 변질되는 일도 경계해야 한다. 누구를 무엇 때문에 키우는지 모든 사람이 알도록 떠들썩하게 후원해야 한다. 밤 늦게까지 술을 마셔야 유대감이 쌓이는 건 아니다. 구내식당이나 회사 근처 카페, 문이 열린 사무실에서 만나면 된다. 개인사를 공유하되 선을 넘지 말고, 관계가 어느 정도 끈끈해졌다면 가족에게 소개하는 것도 방법이다.

조직 내 관리자급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 빼곡하다. 저자는 “‘잘 키운 후배'를 통해 궁극적으로 얻을 수 있는 건 ‘직업적 유산(legacy)’을 남기는 것”이라 말한다. 적절한 후계자에게 배턴을 넘겨줌으로써 커리어를 마감하더라도 조직에 긍정적인 발자국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다. 곽아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