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파이 플레이
스벤 칼손·요나스 레이욘휘부드 지음|홍재웅 옮김|비즈니스북스|400쪽|1만8000원
책 제목에 나오는 스포티파이(Spotify)는 2006년 설립된 스웨덴의 온라인 음악 서비스 회사다. 올해 10월 기준으로 전 세계 90여 국 이용자가 3억2000만명. 이 가운데 유료 가입자만 1억4400만명이다. 아직 본격적인 국내 진출 이전이라 회사 이름이 낯설 수도 있다.
그러나 신문이나 방송을 유심히 보면, 하루 건너 한 번씩 스포티파이라는 이름을 접할 수 있다.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 같은 K팝 그룹들이 스포티파이의 인기 차트 상위권을 휩쓸었다거나,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부부가 스포티파이와 계약을 맺고 온라인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대표적이다. 살짝 과장하면 스포티파이는 ‘음악 산업의 넷플릭스’다. 조금 더 과장을 보태면 넷플릭스를 ‘영상 산업의 스포티파이’라고 할 수도 있다.
스웨덴 IT 담당 기자들이 함께 쓴 이 책을 딱 한 줄로 요약하면 ‘스포티파이의 성공기’일 것이다. 이 회사의 성공 과정에서 가장 극적인 에피소드는 책의 첫머리에 나온다. 미국 진출을 앞두고 있던 2010년 말 스포티파이의 설립자 다니엘 에크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당시 수화기 너머로 아무 말도 없이 씩씩거리기만 했던 통화 상대가 애플의 스티브 잡스(1955~2011)였다. 미국의 디지털 음악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애플의 입장에서는 이 회사가 그야말로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다.
췌장암 투병 중이던 잡스는 결국 생전에 에크를 만나지 못했다. 이듬해 잡스가 세상을 떠나자 에크는 트위터에 이런 조사를 통해서 라이벌에게 깍듯하게 예우를 표했다. “스티브 고맙습니다. 당신은 제 인생의 아주 많은 부분에 진정한 영감을 주었습니다. 제 모자를 벗어 우리 시대의 다빈치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스웨덴은 아바(ABBA)를 배출했고 헤비메탈과 댄스 음악으로 유명한 팝 음악의 강국이다. 과감한 창업 지원 정책으로 북유럽의 스타트업 중심으로도 꼽힌다. 이런 배경을 감안하면 스포티파이의 탄생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음악계의 넷플릭스’의 탄생 과정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스포티파이가 탄생한 21세기 초반의 세계 음악 시장은 하락세를 면하지 못했다. 기존의 음반 판매량은 급전직하의 내리막길이었고, 디지털 시장에서는 불법 다운로드가 판치고 있었다.
악재(惡材)투성이 음악 시장에서 스포티파이가 고심 끝에 꺼낸 승부수가 ‘합법적인 무료 음악 서비스’였다. 가입자들에게 음악을 무료로 들려주는 대신 유료 광고를 유치하는 전략이었다. ‘합법=유료’ ‘불법=무료’라는 낡은 고정관념을 깨뜨린 이들의 역발상은 음악계의 판도를 흔드는 회심의 반전 카드가 됐다.
스포티파이가 탄생한 20세기 초는 아직 와이파이도, 5G도 보편화되기 전이었다. 하지만 ‘원하는 음악을 0.2초 만에 들려준다’는 이들의 남다른 기술력도 든든한 성공의 발판이 됐다. 에크는 2011년 뉴욕 타임스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편리함에 대해 지불할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사용자 친화적이고 편리한 서비스라는 이들의 운영 원칙은 초창기 회사 보고서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번개처럼 서비스는 빨라야 하고, 절대로 해킹당해서는 안 되며, 음악이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처럼 흘러야 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단순히 ‘신데렐라식 성공 스토리’로만 이해한다면, 이 책의 절반만 읽는 것과 같다. 대부분의 스타트업 기업처럼 이들의 행보 역시 시행착오와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음악에 이어서 야심차게 영상 분야 진출에 나섰지만 경쟁사에 밀려서 참패를 당했고, 관련 업체를 인수했다가 최악의 투자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밥 딜런부터 테일러 스위프트까지 인기 가수들이 창작자의 정당한 권리 보장을 요구하면서 스포티파이에서 자신의 발표곡을 빼기도 했다. 하지만 가수와 음반사의 복잡한 이해 관계에도 끈질기게 상대를 설득하는 인내심이야말로 나머지 절반의 성공 비결이었다. 2009~2014년 스포티파이가 저작권료로 지불한 금액만 20억달러(2조2000억원)에 이른다.
책 후반부에는 현재 세계 음악 시장에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알고리즘 추천 방식에 대해서도 상세히 소개한다. 쉽게 말해서 인공지능(AI)을 이용해 내가 듣고 싶은 곡들을 족집게처럼 알아서 척척 골라준다는 뜻이다. 책에서는 “오래된 연인보다도 내 음악 취향을 더 정확히 알고 있다”는 구절로 표현한다. 편리의 극한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취향과 속마음까지 낱낱이 드러나는 것이 그 대가라고 생각하면 어쩐지 오싹해지기도 한다. IT 기업의 눈부신 성공 이면에는 개인 정보와 사생활 노출 문제가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