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

진중권 지음|천년의상상|296쪽|1만7000원

“나는 내가 맞서 싸우는 그 사람들을 증오하지 않고, 내가 위해서 싸우는 그 사람들을 사랑하지도 않는다.”

예이츠의 시 ‘아일랜드 비행사가 죽음을 내다보다’의 한 구절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서문에서 “논객은 나팔수가 아니라 보는 자가 되어야 한다”면서 이 문장을 인용한다. 자기를 ‘극우 논객’이라 부르는 여당 지지자들과 선을 긋는다. “한쪽의 비난이 나를 슬프게 하지도, 다른 쪽의 환호가 나를 기쁘게 하지도 않는다”면서 “그저 그 모두 진정이라 우겨 말할 때 홀로 일어나 ‘아니’라고 말할 사람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버티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진 전 교수는 “조국 사태로 진보는 파국을 맞았다”고 주장하면서, 기득권이 되어 부패한 586 세대를 조목조목 비판한다. “그들은 이렇게 바꿀 것보다 지킬 것이 더 많은 보수층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살해한 나쁜 아버지보다 더 나쁜 아버지가 되었다. 산업화 세대는 적어도 그들에게 일자리도 얻어주고 아파트도 한 채 갖게 해 줬다. 하지만 586 세대는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일자리도 아파트도 주지 않는다. 그저 자기 자식들에게 재산과 학벌을 물려주느라 그 검은 커넥션을 활용해 다른 젊은이들에게서 ‘공정’하게 경쟁할 기회마저 빼앗아버린다.”(273쪽)

논리는 직설적이지만, 미학 연구자다운 인문학적 소양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자기들이 여전히 독재 정권의 후예와 싸우는 정의롭고 순결한 투사라고 상상하는 민주당 586 세력을 오스카 와일드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 나오는 결코 늙지 않는 주인공에 빗댄 것이 인상적이다. 곽아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