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돈 드릴로 지음/ 송은주 옮김/ 창비/ 140쪽/ 1만4000원
노벨문학상 후보로 매년 거론되는 미국 소설가 존 드릴로의 신작 중편 소설이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출간됐다. 이 소설은 2022년 전 세계의 디지털 네트워크가 작동을 멈춘 가상 상황을 그렸다. TV를 비롯해 휴대폰, 컴퓨터가 모두 먹통이 된 가운데 평소 ‘자기 휴대폰 안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이 고립 상태에 빠지는 사태를 상상했다.
뉴욕에 사는 작가가 코로나 사태로 도시 일상이 마비되기 직전 완성한 소설이기 때문에 영어권 언론에선 대재앙의 풍자 소설이자, 소셜미디어 시대의 부조리극으로 풀이했다. 작가는 “3차 대전에서는 어떤 무기로 싸우게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4차 대전에서는 몽둥이와 돌을 들고 싸우게 될 것이다”라고 한 아인슈타인의 문명비판론을 인용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도입부는 비행기 불시착에도 살아남은 부부의 재난 극복기로 꾸며진다. 그 무렵 뉴욕 맨해튼의 한 아파트에선 세 사람이 미식축구 수퍼볼 중계를 보기 위해 TV 앞에 모여있다. 갑자기 TV 화면이 일그러지더니 하얗게 변해버린다. 또한 비행기 불시착에서 살아남은 부부가 맨해튼의 아파트를 찾아오면서 모두 다섯 명의 등장 인물이 암흑 천지를 살아간다. 그들은 부조리한 상황에서 어쩔 줄 모른 채 무의미한 대화를 주고받는다. 저마다 떠들지만, 사태 원인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어서 대화가 이뤄지지 않는다. ‘침묵’이 지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디지털 네트워크 덕분에 인류가 초연결 사회를 누리지만, 자기 입장만 내세운 채 남의 말을 듣지 않아 역설적으로 단절이 심화된 세계를 에둘러 풍자한 소설이다.
박해현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