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프강 슈라이버 지음|이기숙 옮김|풍월당

아바도 평전

볼프강 슈라이버 지음|이기숙 옮김|풍월당|368쪽|2만5000원

1989년 10월 8일 세계 음악계의 이목이 독일 베를린에 집중됐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였던 ‘클래식 황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의 후임자를 뽑기 위한 단원 투표가 이날 열렸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한 달 전이었다. 지휘자 로린 마젤, 주빈 메타, 다니엘 바렌보임.... ‘카라얀의 후계자’로 거론된 후보들은 화려했다. 하지만 단원들의 비밀 투표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이탈리아 출신의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1933~2014)가 막강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후임자로 선정된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한 아바도는 “2분간 숨을 쉴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

독일 음악 비평가로 1970년대부터 지근거리에서 아바도를 지켜본 저자는 이 평전에서 재미난 비화를 털어놓는다. 당초 “아바도는 카라얀 후임으로 물망에 오른 지휘자 중 비공식 후보 명단에도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카라얀은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아바도는 클래식 애호가가 아니면 낯선 이름일지도 모른다.

이 평전의 새로운 독법(讀法)은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유명한 단체를 이끄는 수장(首長)의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로 읽는 것이다. 작곡가 브람스와 바그너의 측근이었던 지휘자 한스 폰 뷜로, 20세기 전·후반을 나눠서 베를린 필을 거느렸던 푸르트벵글러와 카라얀까지.... 이 악단의 상임 지휘자는 사실상 당대 최고의 지휘자와 동의어였다. 그런 명문 악단을 카라얀에 이어서 맡게 된 것이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모습. 카라얀의 후임이었던 그는 악단의 현대화와 민주화를 이끌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따지고 보면 오스트리아 출신의 카라얀과 이탈리아의 아바도는 국적부터 모든 것이 대조적이었다. 카라얀은 권위적이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으로 베를린 필을 세계 정상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서는 악단 운영을 놓고 사사건건 단원들과 대립했다. ‘마에스트로(거장)’로 불렸던 카라얀과 달리, 아바도는 스스럼없이 단원들에게 “나는 클라우디오예요. 누구든지 이름으로 부르세요”라고 말했다. 2차 대전 당시 무솔리니 치하에서 반(反)파시즘 의식을 키웠던 아바도는 1인 독재나 자기 미화를 경계했다. 실제로 아바도는 “내가 모든 단원들을 존중하면 그 존중은 다시 내게 돌아온다”고 말했다. 지휘자의 길을 걷기 전 파르마 음악원에서 실내악을 가르쳤던 아바도는 서로의 연주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카라얀이 군림의 지휘자였다면, 아바도는 경청(傾聽)의 음악가였다.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 유니버설뮤직코리아

연주 곡목에서도 카라얀과 아바도는 대조적이었다. 스트라빈스키와 쇤베르크의 초기작을 제외하면 현대음악에 인색했던 카라얀과는 달리, 아바도는 20세기 동시대 작곡가들에게도 악단의 문호를 활짝 개방했다. 베를린 필에 취임한 뒤에는 시인 횔덜린과 셰익스피어, 파우스트 등 특정한 주제를 선정한 뒤 관련 작품을 묶어서 연주하는 시리즈 음악회를 과감하게 도입했다.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로 유명한 배우 브루노 간츠가 횔덜린의 시와 토마스 만의 소설 ‘파우스트 박사’를 낭송하면, 아바도는 이들 문학 작품에 바탕한 말러의 교향곡과 현대음악을 연주하는 방식이었다. 아바도야말로 인문학과 클래식 사이의 거리가 존재하지 않았던 지휘자였다.

하지만 베를린 필의 민주화와 현대화 과정에서도 극심한 진통이 뒤따랐다. 일부 단원은 리허설을 길게 끌고 가는 아바도의 스타일에 반발했다. 급기야 불화설이 불거졌다. 위암 진단을 받은 아바도는 1998년 재계약 포기를 선언했다. 세계 최고 악단의 수장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오겠다고 밝힌 것이다.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 유니버설뮤직코리아

이쯤에서 아바도의 음악 인생이 멈췄다면, 오늘날과 같은 존경과 사랑을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간혹 정상에 올라갈 적보다 내려가는 모습이 더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 아바도가 그랬다. 그는 위 절제 수술을 받은 뒤에도 스위스의 호반 도시 루체른에서 매년 여름 말러의 교향곡을 지휘하는 음악제를 부활시켰다. 그의 부활 선언에 전 세계의 클래식 순례자들이 루체른으로 몰려들었다.

2011년 아바도가 지휘한 말러의 미완성 교향곡 10번 ‘아다지오’ 악장을 루체른에서 들은 적이 있다. 작곡가가 완성하지 못했던 교향곡을 통해서 지휘자는 관객들에게 이별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만 같았다. 세상에 미리 대비해야 하는 헤어짐도 존재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렸다. 그로부터 3년 뒤 아바도는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