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훈의 이슈&북스] ‘특혜와 책임’

정부가 개천절에 이어 한글날에도 광화문 집회를 원천 봉쇄했다. 정부는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든다. 그러나 같은 논리라면 사람이 훨씬 많이 모이는 서울대공원, 롯데월드, 에버랜드 등에도 집합제한 조처를 해야 했다. 이러니 정부의 광화문 집회 봉쇄가 코로나19 확산 방지 아닌 정치 방역이란 얘기를 듣는다. 경찰 차벽과 펜스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따로 있다.

<YONHAP PHOTO-4648> "광화문 광장 진입 어려워요" (서울=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한글날인 9일 서울 광화문광장으로 향하는 시민이 경찰 통제에 막혀 있다. 2020.10.9 mon.yna.co.kr/2020-10-09 16:00:55/Media Only <저작권자 ⓒ 1980-202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방역 전쟁 운운하는 정부의 서슬에 눌려 국민은 민주적 기본권까지 제약당하고 있다. 그런데 강경화 외교장관의 남편인 이일병 연세대 명예고수가 요트 여행을 하겠다며 미국으로 떠난 사실이 밝혀졌다. 그간 강경화 장관 국민을 향해 “정부 방역 조치에 협력해달라”며 “협조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강제수단까지 써야 한다”고 말했다. “사생활은 중요한 인권이지만 절대적인 권리는 아니다”라고도 했다.

그러나 남편 외유에 대해선 “워낙 오래 계획했고, 여러 사람, 친구들과 계획했기 때문에 쉽게 귀국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했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장관의 배우자가 공인이냐 아니냐에 관한 문제가 있다. 또 이 과정에서 불법이나 특권 또는 반칙 등이 있었느냐는 것인데, 일종의 여행 권고라는 게 말 그대로 권고이지 않느냐, 그래서 불법이나 위법, 특권은 없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정권 사람들은 국민이 그들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모르거나, 외면하고 있다. 국민이 대한민국 고위층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단지 법만 잘 지키라는 게 아니다. 국민은 사회 지도층이 솔선수범하기,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을 바란다.

원로 정치학자인 송복 전 연세대 교수는 저서 ‘특혜와 책임’ 사회 지도층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지켜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한마디로 특혜받는 사람들의 책임이다. 옥스퍼드 사전은 ‘특혜는 책임을 수반한다’는 말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정의하고 있다. 특혜와 책임은 동전의 안팎이다. 책임 없는 특혜는 없다. 특혜를 받았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특혜만 챙기는 특혜받는 사람, 그들의 수명은 너무 짧다. 그들이 끝나는 자리는 질타와 분노와 치욕만이 기다리고 있다.”(‘특혜와 책임’ 10쪽)

'노블레스 오블리주' 없는 한국 상층의 민낯! / 송복 지음, 가디언.

남편 여행이 여론의 비판을 받는 가운데, 강경화 장관이 2017년 장관 청문회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에서 서울로 오면서 1000만원 넘는 항공료를 전액 세금으로 지원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휴대전화 임차료 18만원, 위장전입 의혹 등 해명을 위한 자문료 150만원 등을 포함해 총 2000만원 가까운 세금이 청문회 준비에 쓰였다. 이는 전임 윤병세 장관의 청문회 준비에 들어간 세금이 268만원의 7배가 넘는다. 이는 ‘국가기관은 공직후보자에게 인사청문에 필요한 최소한의 행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한 인사청문회법 제 15조 2의 규정을 무색해지게 하는 처사이기도 하다.

송복 교수는 책에서 "특혜받는 사람은 희생이란 이름으로 3가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썼다.

첫째, 목숨을 바치는 희생이다.

전쟁이 났을 때, 또는 심각한 안보상의 위기에 나라가 처했을 때, 누구보다 앞장서서 구국의 제단에 목숨을 던져야 한다.

둘째, 기득권을 포기하는 희생이다.

조국 전 법무장관과 추미애 현 법무장관은 자신들이 가진 영향력을 사용해 기득권을 대물림하는 편법과 반칙을 썼다. 이래선 국민이 결과에 승복할 수 없게 된다.

셋째, 배려하고 양보하고 헌신하는 희생이다.

송복 교수는 일상에서 힘 있는 자들이 갑질만 하지 않아도 이 가치를 이룰 수 있다고 썼다.

강경화 장관은 이 정권에서 k5로 불린다. 문재인 대통령의 신임이 아주 두터워 대통령 임기인 5년 내내 장관을 할 사람이란 뜻으로 쓰인다. 강 장관이 특별히 일을 잘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외교장관으로서 지난 3년간의 업적은 미미하고 위상도 초라하다. 미국과 미국의 주요 동맹인 일본·인도·호주 등 네 나라가 7일 도쿄에 모여 쿼드(Quad) 안보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 한국이 없다. 외교 왕따다. 뉴질랜드에서 성추행 사건이 발생한 걸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국제적으로 망신당했다.

이 정부가 차벽과 펜스를 친 이유를 일부에선 ‘조국 학습효과’라고 분석한다. 지난해 개천절 광화문에 모인 수많은 국민이 조국 당시 법무장관 퇴진을 요구했다. 사회 지도층이자 서울대 교수로서의 특권을 이용해 자식들을 의전원 보내고 대학원 보낸 반칙왕의 퇴진을 외쳤고, 결국 그렇게 됐다. 집회가 올해도 정부의 방해를 받지 않고 열렸다면 이 정권의 고위 인사들에 대한 퇴진 요구가 쏟아져 나왔을 것이다.

아들 휴가 특혜 의혹 관련해 추미애 장관이 국회에서 무려 스물일곱번이나 거짓말을 한 게 들통났다. 예전 같으면 절대 장관자리에서 버티지 못할 행태다. 이 정권은 광화문 집회에서 추 장관을 사퇴를 요구하고, 그런 인사를 장관으로 발탁한 대통령을 성토하는 목소리도 울려 퍼지는 것을 막아야 했다는 것이다.

이 정권이 광화문에 재인장성을 쌓아 지키고자 했던 것은 국민 건강도 방역도 아니다. 그 산성 속에서 온갖 특혜와 권력을 누리는 그들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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