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책을 냈어? 이번엔 무슨 책이야?” 칭찬인지 짜증인지 가름이 안 되는 목소리로 친구가 물었다. 책 제목이 ‘나라말이 사라진 날’이라 했더니, 대뜸 “'나랏말'이 아니고 ‘나라말’이야?” 하고 물었다. 훈민정음 창제 과정을 소재로 지난해 개봉한 영화 제목이 ‘나랏말싸미’였고, 훈민정음 언해본에도 ‘나랏말ᄊᆞ미’라는 표기가 보여서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에 ‘나랏말’은 없다. ‘나라말’로 검색해야, ‘한 나라의 국민이 쓰는 말’이란 설명이 나온다.
흥미로운 것은 예문이다. “남의 나라 사람이 자기 나라말을 솜씨 있게 쓰는 것을 들으면, 신기할 뿐만 아니라, 자기 나라말이 새삼스럽게 정답게 들린다. <염상섭, 백구>”. 염상섭 장편소설 ‘백구’는 1932년 10월부터 1933년 6월까지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됐다. 아마도 당시엔 ㄴ 소리를 덧내지 않고, 부드럽게 ‘나라말’이라고 발음한 듯하다. 만일 ㄴ 소리가 덧나면 사이시옷이 들어가야 한다. 내 책 제목에 ‘나랏말’이 아닌 ‘나라말’이 들어간 까닭이다.
‘나라말이 사라진 날’(생각정원)은 일제에 의해 말살될 뻔했던 우리말글을 지키기 위해 투쟁한 조선어학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조선어학회는 우리말 사전을 만들다 감옥에 갔지만 맞춤법, 표준말, 외래어 표기법 등 민족어 3대 규범을 제정해 무질서한 조선어를 질서정연한 근대적 언어로 만들었고, 해방 후 한글의 시대를 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말글은 어떤가? 팬데믹, 드라이브 스루, 셸터 같은 외래어가 범람한다. “미모가 일치얼짱”이라느니, “시럽계 갈지 입문계 갈지” 고민한다느니, “너는 내 발여자”라며 구혼한다느니, “사생활 치매하지 말라”며 선을 긋는다느니 중구난방 비명을 지른다. 영어 귀신에 홀려 우리말글의 소중함을 잊은 것은 아닌지, 말은 편하게 쓰면 된다고 막무가내 생떼를 쓰는 것은 아닌지? 우리말글에 소홀한 우리말글 주인님들께 ‘아이콘택트’가 아닌 ‘눈 맞춤’ 한번 부탁드린다.
정재환·방송인 출신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