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의 심리학
폴 에크먼 지음|허우성·허주형 옮김|바다출판사|452쪽|1만7800원
극심한 우울증을 앓아 입원한 40세 여성 메리가 “기분이 훨씬 나아졌고 더 이상 극단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하룻밤 집에 보내달라고 말한다. 그는 입원 전 세 번 자살을 기도했다. 의사들은 고민에 빠졌다. 정말 상태가 호전됐다면, 하루 외박은 정상적 삶으로 돌아가기 위한 중요한 단계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병원의 감독을 벗어나 목숨을 끊기 위해 거짓말을 할 수도 있지 않은가? 외박 며칠 전 메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병원을 나가면 자살할 생각이라고 털어놓았다.
감정과 표정 연구의 선구자인 심리학자 폴 에크먼 UCSF 명예교수는 외박 승인 전 의사가 메리를 인터뷰한 영상을 분석했다. 12분짜리 영상의 표정과 몸짓 하나하나를 100시간 넘게 검토했다. 의사가 장래 계획을 묻자 대답하기 직전 멈칫하는 메리의 얼굴에 엄청난 고통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1/12초 사이에 지나갔으며 금방 웃음으로 덮였다. 에크먼은 이처럼 1/25초에서 1/5초 동안 지속되는 매우 빠른 얼굴 움직임을 ‘미표정(微表情·micro expression)’이라 명명하고 연구 끝에 이런 표정이 감정을 의도적으로 은폐하거나 억압할 때 나타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꾸며낸 표정은 진실된 표정보다 비대칭적이다. 불수의근도 움직이지 않는다. 진심으로 즐거워 웃을 땐 눈둘레근 바깥 부분이 움직여 눈가 주름이 생기고 눈이 가늘어지며 뺨이 올라가지만, 거짓 웃음에서는 눈썹과 눈두덩이가 밑으로 당겨지는 것 같은 미세한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는다. 에크먼은 이후 미표정 연구 성과를 국가 안보를 위해 활용하는 방안에 주력했다. 그가 개발한 ‘진실성 평가 훈련 프로그램’이 FBI, CIA 등의 실무에 이용되고 있다.
2015년 감정을 다룬 픽사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 과학 자문을 맡기도 한 에크먼은 책에서 기쁨⋅슬픔⋅분노⋅혐오 같은 대표적 감정을 분석하고 표정과의 연관 관계를 살핀다. 분노에 대한 연구가 특히 흥미롭다. 인간은 물리적으로 방해받거나 심리적으로 상처받을 때 분노한다. 타인의 행위에 대한 실망도 우리를 화나게 할 수 있다. 깊이 아끼는 사람이 그럴수록 더 깊이 분노한다. 연애 초기 단계에서 환상 속 이상에 연인이 따라주지 않으면 화를 내게 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에크먼은 설명한다. “낯선 사람보다 친밀한 사람에게 화를 내는 편이 안전할 수 있다. 가장 아끼는 사람에게 가장 크게 화가 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들이 우리를 잘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두려움과 약점, 무엇이 우리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는지를 그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고
감정과 표정의 연관 관계를 왜 알아야 하는가? 궁극적으로는 타인과 공감하기 위해서다. 누군가 내게 화를 내 있을 때, 그의 감정을 이해하면 관계가 매끄러워진다. 에크먼은 “분노한 사람과 공감하기 위해서는 분노의 원천을 알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화났던 기억을 떠올리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화난 표정을 지어보는 것도 효과적이다. 눈썹을 가운데로 모아 내리고, 눈을 크게 뜨고, 힘껏 노려보며 입술을 꽉 다물어 힘을 준다. 이런 표정을 지으면 심박수가 높아지고 호흡이 가빠진다. 이렇게 한다면 적어도 화난 사람의 면전을 향해 시비조로 “왜 내게 화를 내지?” 하는 대신 “내가 너를 화나게 했다면 유감이야. 뭔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말해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자신이 지나치게 감정적이어서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저자는 감정을 주의 깊게 관찰해 보라고 조언한다. 요즘 유행하는 ‘마음챙김(mindfulness)’ 명상과도 일맥상통한다. 후회하는 사건에 대해 감정 일기를 써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지적이면서도 실용적인 책. 저자가 딸에게 여러 표정을 짓게 해 찍은 사진을 흉내 내며 읽으면 더 재미있다. 원제 Emotions Revea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