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훈의 이슈&북스] ‘동물동장’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의 군 복무 시절 휴가 관련 특혜 의혹이 제기된 이후 이 나라 집권세력의 특권적 행태가 또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추 장관이 여당 대표 시절 그의 아들 휴가 연장을 위해 보좌관이 군부대에 전화를 여러 차례 걸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국회의원 보좌관 월급은 국회의원이 자기 주머니를 털어 주는가. 국민 세금으로 지급한다. 그런데 왜 국회의원 가족이 의원 보좌관을 부리는가.

이 사건과 함께 요즘 특권층의 행태를 확인하게 되는 재판도 진행되고 있다.

조국 전 법무장관 부부 자녀에게 허위 인턴증명서를 써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와 조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 허위작성이 의심되는 서류를 건네며 이렇게 말한 것으로 법정에서 드러났다.

소설 '동물농장' 원작의 애니메이션. 인간을 몰아내고 동물의 천국을 만들겠다며 집권한 돼지들이 약속을 어기고 인간처럼 생활한다.

최 대표: 형수님, 그 서류로 00이가 합격하는데 도움이 되면 참 좋겠습니다.

정 교수: 예, 그 서류는 연고대를 위한 건데 어쩜 좋을지. 우리도 한 번 000(와인바)에서 와인을 한잔 하시죠.

정 교수 아들 조씨는 이 서류를 연세대와 고려대 대학원 입시에 활용해 2018년 합격했다.

이게 이 나라 특권계급이 군대에서 누리는 혜택이고 명문대 들어가는 스펙인가. 영창 안 가려면 휴가날짜 지켜야 하고, 대학은 오로지 자기 실력으로 가야 하는 보통사람들은 허탈해질 수밖에 없는 대화 내용이다.

얼마 전 최민희 전 의원이 “조국 전 장관은 초엘리트다. 서민들은 박탈감 느끼겠지만 불법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초 엘리트는 편법 써서 특권 누려도 된다는 논리다. 최 의원은 사회 지도층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뜻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모르는가.

영국과 아르헨티나 사이에 포클랜드 전쟁이 터지자 엘리자베스2세 영국 여왕은 앤드루 왕자를 전쟁터에 보냈다. 여왕의 손자인 해리 왕자는 이라크전에 전투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초엘리트는 남들보다 더 누리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나중에 누리는 사람이어야 한다. 영국 왕실처럼 전쟁이 터지면 위험한 곳에 가서 솔선수범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존경하고 따른다.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은 소련 공산주의의 타락상을 조롱하기 위해 쓴 작품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현실에도 적용 가능하다.

소설에서 동물들은 자기들만의 천국을 이룩하겠다면서 혁명을 일으켜 농장 주인을 내쫓는다. 그런데, 혁명을 주동한 돼지들 사이에서 권력다툼이 일어나 나폴레옹이란 돼지가 권력을 장악한다. 이후 나폴레옹은 옛날 인간이 하던 대로 다른 동물들을 착취하고 심지어 도살업자에게 팔아넘기며 농장의 권력자로 군림한다.

돼지들은 혁명을 일으키면서 혁명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7계명을 내세운다. 하지만 단 하나도 지키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말바꾸기와 궤변이 동원된다.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면 안 된다’는 구호는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시트를 깔고 자면 안 된다’로 수정됐다.

조지 오웰의 정치 풍자소설 '동물농장'

돼지들이 권력 잡고 보니 인간처럼 아늑한 침대에서 자고 싶어졌다. 그러나 다른 동물들의 시선이 의식되자 궁리 끝에 ‘시트 사용 금지’라는 규정을 추가하고 자기들은 시트가 아닌 담요를 덮고 잤다. 그러면서 다른 동물들에겐 “너희는 건초 깔고 자. 건초도 침대잖아”라고 궤변을 늘어놓았다.

추 장관 아들 의혹을 비호하는 과정에서 이 정권 인사들도 궤변과 말바꾸기 행태를 보였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카톡으로도 휴가연장을 신청할 수 있다”는 말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정청래 의원은 “식당서 김치찌개 빨리 달라고 하면 청탁이냐?”고 했고, 설훈 의원은 “추미애 아들, 군대 안 가도 되는데 복무했다. 오히려 칭찬받아야 한다”고 했다. “추미애 아들 군대 휴가 논란, 청년들은 특혜 아니라더라.”(김남국 의원), “카투사 자체가 편한 곳이다. 논란 의미 없다.”(우상호 의원) 등의 발언이 이어졌다. 마침내 추 의원 아들을 안중근 의사에 비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동물농장의 혁명 공약인 7계명이 모두 폐기된 후 집권 돼지들은 단 하나의 새로운 조항을 선포한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욱 평등하다.’

오늘, 대한민국 현실에 대입하면, ‘너희는 그냥 붕어 개구리 가재들이고, 우리 돼지들은 너희와는 다른 귀족’이란 선언이다.

나폴레옹 주변에는 권력의 주구와 아첨꾼, 맹목적 추종자들이 들끓는다.

독재자 나폴레옹을 열렬히 추종하는 말인 ‘복서’는 늘 이렇게 말한다. “나폴레옹은 언제나 옳다.”

거세한 수퇘지 ‘스퀼러’는 사실을 조작하고 진실을 은폐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 정권의 나팔수로 나선 방송들의 행태를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다.

나폴레옹의 비호 아래 온갖 특권을 누리며 자라나는 새끼 돼지들은 장차 대를 이어 권력을 누리게 된다.

나폴레옹 독재에 반기를 들었다가 살해당하는 ‘혁명돼지 4마리’는 집권 여당 안에서 바른말 하다가 공천 탈락하고 징계까지 당한 금태섭 전 의원을 떠올리게 한다.

마지막으로 ‘아홉마리 개’는 나폴레옹의 충복이자 공포정치의 하수인들이다. ▶나라를 지키랬더니 정권과 민주당 지키기나 하니 ‘민방부’ 아니냐는 비난을 사고 있는 국방부 ▶국민의 권익이 아니라 정권의 권익을 지키는 행태를 보인다는 지적을 받는 국민권익위원회 ▶공익제보 한 젊은 청년을 향해 ‘단독범’이란 극단적 표현을 써가며 공격한 여당 국회의원 등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소설에서 돼지들은 네 발로 기어다니는 다른 동물과 자신들을 차별화하기 위해 마침내 인간처럼 두 발로 걷기 시작한다.

'돼지 하나가 두 발로 서서 걷고 있었다. 스퀼러였다.(중략) 나팔 소리가 나면서 이윽고 나폴레옹이 거만한 눈길을 좌우로 던지며 걸어나왔다. 당당하게 선 자세였다.(중략) 양들이 일제히 목청을 높여 우렁차게 외쳐대기 시작했다.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더 좋다!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더 좋다.’(‘동물농장’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6~117쪽)

소설 동물농장은 돼지가 인간을 농장으로 초대해 술판을 벌이는 장면으로 끝난다. 건물 밖에서 이 술판을 훔쳐보는 보통 동물들은 곤혹스럽다. 신흥 적폐인 돼지들과 옛날 적폐인 인간을 구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