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 평전
엘리자베스 노먼 맥케이 지음|이석호 옮김|풍월당|712쪽|4만8000원
‘가곡의 왕’ 슈베르트(1797~1828)의 음악적 재능을 누구보다 일찍 눈여겨본 건 안토니오 살리에리였다. 영화 아마데우스 탓에 ‘모차르트 살해범’으로 잘못 알려졌지만, 빈 궁정 음악감독이었던 살리에리는 베토벤과 슈베르트, 리스트 같은 작곡가를 길러낸 당대의 교육자였다. 살리에리는 열 살 소년 슈베르트의 바이올린·피아노 연주와 노래를 듣고서 궁정 예배당 합창단원 선발에 응시하라고 권했다. 직접 심사도 맡았고 합격한 뒤에는 매주 2번씩 음악 이론과 작곡도 가르쳤다. 17세의 슈베르트가 미사곡을 발표했을 때 얼싸안고 격려해준 스승도 살리에리였다. 역설적으로 살리에리가 없었다면 훗날 ‘겨울 나그네’와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같은 슈베르트의 걸작 가곡집은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1814~1817년의 기간에만 슈베르트는 320여 곡의 가곡을 쏟아냈다. 10대 후반부터 그가 가곡에 매료됐던 이유가 있었다. 오늘날 말로 선후배 동료들과 함께 문학 작품을 쓰고 읽고 토론하는 ‘인문학 서클’에 가입한 것이었다. 그가 읽은 시들은 훗날 고스란히 가곡의 노랫말이 됐다. 하지만 보수적인 오스트리아 재상 메테르니히는 통제와 검열 조치를 부쩍 강화하고 있었고, 슈베르트의 서클 회원들도 경찰이나 검열 당국의 감시 대상에 올랐다. 심지어 슈베르트의 이름과 직업이 적힌 보고서도 당시 악명 높은 빈의 경찰청장에게 올라갔다고 한다.
이를 근거로 슈베르트를 ‘운동권’으로 단정하는 건 분명 지나친 발상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주변에 급진적이고 이상주의적인 학생 운동에 투신했던 선후배들이 적지 않았던 것만은 분명하다. 척추 장애로 등이 굽었던 형 이그나츠도 급진주의자이자 자유 사상가였다. 실제로 영국의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도 연가곡 ‘겨울 나그네’의 작사가와 작곡가인 빌헬름 뮐러와 슈베르트의 공통점에 대해 “확실한 것은 두 사람 모두 창작 활동을 하면서 탄압의 굴레를 느끼고 여기에 저항했던 순간이 있었다는 점”이라고 평가했다.
영국의 음악학자이자 가곡 반주자였던 엘리자베스 노먼 맥케이(1931~2018)의 ‘슈베르트 평전’은 영어권에서 나온 최고의 작곡가 전기로 손꼽힌다. 옥스퍼드대에서 슈베르트의 극 음악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녀는 반 세기에 걸쳐 슈베르트의 삶과 작품에 대한 주요 저서들을 남겼다. 서문에서 저자는 집필 방향에 대해 ‘있는 그대로의 전기’라고 밝힌다. 이 말이 보여주듯이 낭만적 이상화나 도덕적 비판이라는 양극단에 빠지지 않고 촘촘한 세밀화처럼 작곡가의 삶을 재구성했다는 점이야말로 이 평전의 미덕이다.
슈베르트의 동료 요제프 케너의 기록처럼 “분열된 영혼의 한쪽은 천상의 세계를 앙망했고, 다른 한쪽은 진창 속에서 뒹굴었다”는 점이야말로 작곡가의 대조적인 두 가지 본성이었다. 31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600여 곡의 주옥 같은 가곡을 남겼던 ‘가곡의 왕’이라는 점은 우리에게 친숙한 ‘천상의 세계’다.
하지만 매독에 걸린 채로 폭음과 줄담배를 일삼았고 흔히 조울증으로 불리는 순환기분장애를 앓았던 ‘진창 속의 면모’도 작곡가에게는 존재했다. 특히 슈베르트는 술이 들어가면 통제 불능의 공격성 분노를 표출했다. 고주망태로 술이 취한 채 욕설과 폭력을 일삼는 ‘가곡의 왕’은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다. 저자는 피아노 독주곡인 ‘방랑자 환상곡’을 완성한 1822년 말 무렵 매독의 초기 증상이 시작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처럼 관련 사료의 치밀한 교차 검증을 통해서 그 어떤 미화나 왜곡도 없이 슈베르트의 ‘두 가지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 애썼다는 점이야말로 이 평전의 특징이다.
작곡가를 둘러싼 음악계의 오랜 논쟁이나 의문점에 대해 단호하고 명쾌한 자세를 보이는 점도 인상적이다. 슈베르트가 대선배 베토벤의 존재에 위축된 나머지, 자신감을 잃고 충분히 성장할 기회를 놓쳤다는 주장에 대해 저자는 “나로서는 동의할 수 없는 의견”이라고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 최근 불거진 동성애설에 대해서도 거리를 둔다. 평생 작곡가는 무명으로 남아 있었다고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슈베르트는 1821년 빈 악우협회 회원 자격이 주어졌고, 그 뒤 4년간 꾸준하게 실내악 연주회에서 그의 작품이 공연되면서 명성을 쌓았다. 타계 1년 전인 1827년에는 악우협회 정회원으로 승격됐다.
슈베르트가 진정으로 위대했던 건 인간적으로 완전무결했거나 흠결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고통과 괴로움은 그에게 삶의 일부였다”는 저자의 평가처럼 매독으로 인한 건강 악화와 고독감, 경제적 곤궁 속에서도 그는 작곡을 멈추지 않았다. 때로는 인간적 고통마저 음악에 고스란히 투영했다. 저자는 작곡가 사후에 출간된 가곡집 ‘백조의 노래’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서 슈베르트의 음악사적 의미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이 가곡집에 실린 ‘아틀라스’에서는 후배 작곡가 바그너식 성악 작법의 전조를 찾을 수 있고, ‘바닷가에서’에서 피아니스트가 그리는 슬픈 정경 속의 물안개와 파도는 윌리엄 터너의 흐릿한 풍경화에 비견할 만한 ‘음악적 그림’이라는 것이다. 참고 문헌을 포함해서 700쪽을 훌쩍 넘는 이 대작은 분명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하지만 완독하고 나면 슈베르트의 가곡들이 이전과는 다르게 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