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 죽는다. 사람(人)이 두 획으로 이뤄진 이유일 것이다.
생명의 본질을 화가 노은님(1946~2022)은 평생 궁리해왔다. 단순한 선, 원초적인 색, 꽃이나 새와 같은 자연의 요소로 화면을 채웠다. 붓과 빗자루, 때로 걸레까지 손에 잡히는 대로 긋고 칠했다. 어린아이 낙서 같은 형상, 태고의 명상적 화풍으로 ‘생명의 화가’라는 별칭이 붙었다. “참다운 예술은 순수를 원한다”는 게 노은님의 생각이었다. “모든 복잡함과 기술을 떠나 단순함이 남을 때 예술은 살아난다.”
암 투병 와중이던 2020년 완성한 ‘무제’는 단순함의 극치다. 제목도 없고, 색조차 쓰지 않았다. 그저 큰 붓으로 캔버스 위를 쓱 왔다 갔을 뿐이다. 그 양 갈래의 흔적이 자연스레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세계 여러 미술관을 다니며 고대 벽화와 토기를 보면 깜짝 놀란다. 살아남은 흔적이 어찌 그리 똑같은지… 그래서 내 그림도 점점 단순해지고 원시적으로 돼간다.” 이 그림은 지난해 8월 서울 개인전 당시 선보인 마지막 신작이다. 전시명이 ‘생명의 시작’이었다.
파독(派獨) 간호보조원 출신으로 모교(함부르크 국립조형예술대) 교수까지 지낸 입지전적 인물이나 악착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림도 인생도 억지로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모두가 전쟁터 군인처럼 죽기 살기로 싸울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자연스러움, 욕심과 번민의 끝에 자리하는 위안. 화가는 지난 18일 그곳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