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의 복원 과정을 마치고 15일 재가동된 ‘다다익선’ 위로 축하용 레이저 빔이 쏟아지고 있다. /뉴시스

“아름답게 변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변하기 때문에 아름답다.”

미디어아트 거장 백남준(1932~2006)은 말했고, 대표작 ‘다다익선’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15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는 ‘다다익선’을 위한 제2의 제막식이 열렸다. ‘다다익선’은 개천절을 의미하는 1003대의 브라운관 TV를 탑처럼 쌓아올린 백남준의 최대 규모 작품이지만, TV 노후화로 인한 고장 등으로 2018년 운영이 멈췄다. 그리고 이날 4년간의 복원 과정을 끝내고 공식 재가동됐다. 9월 15일은 1988년 ‘다다익선’ 첫 제막식이 열린 날이기도 하다.

가장 동시대적 작가였던 백남준, 그리고 새로 불을 밝힌 ‘다다익선’을 위해 재개 행사 역시 동시대적 방식으로 진행됐다. 현란한 디제잉과 레이저쇼로 분위기가 고조되자, 현대 무용팀이 높이 18.5m, 16톤짜리 거대한 덩치에 몸짓을 부여했다. 2시 58분, 함성과 함께 ‘다다익선’이 컬러를 내뿜기 시작했다. 작품 설치를 도맡아 ‘백남준의 손’으로 불리는 이정성 아트마스타 대표는 “수명이 다해가던 걸작이 다시 살아나 기쁘다”며 “이번 복원 노하우가 향후 체계적 관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988년 제막 당시 '다다익선' 전경. 이 작품은 서울올림픽을 기념해 한국 전위미술의 세계적 홍보를 위해 설치됐다. / 국립현대미술관

최근 서울 황학동 벼룩시장에는 “미술관 때문에 브라운관이 씨가 말랐다”는 소문이 돌았다. ‘다다익선’에 갈아끼울 브라운관 TV를 구해야 했지만, 생산 공장이 모두 문을 닫은 지 오래라 고물상을 뒤질 수밖에 없었다. 권인철 학예사는 “국내는 물론이고 중국 선전 등 해외 중고 시장까지 싹 털었다”며 “브라운관 모니터를 되살리는 공장이 있다는 ‘헛소문’을 믿고 미국에 날아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코로나 사태로 해외 수급이 어려워졌지만, 전국을 돌며 악착같이 브라운관 모니터 600여 대를 확보했다. 이 중 41대가 이번에 투입됐다. 복원 사업 예산은 37억원이다.

“그러나 언제 또 망가질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계속 낡아가기 때문이다. 이날도 재가동과 동시에 TV 1대가 오작동으로 꺼져버렸다. 2003년 모니터 전면 교체 등 30년 넘게 수리를 반복해왔지만, 이제는 원작(原作)과 동일한 제품을 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변화가 영생(永生)을 가능케한다. 백남준은 그 시대에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는 모니터를 작품에 사용했다. ‘다다익선’ 역시 모니터가 고장나면 교체해도 좋으며 이에 관한 전권을 테크니션(이정성)에게 일임한다는 각서까지 써줬다. 이 철학을 바탕으로 ‘다다익선’ 상단 6인치 및 10인치 브라운관 TV 액정 266대가 평면 모니터(LCD)로 교체됐다. 향후에도 이 같은 변신은 계속될 전망이다.

원래 ‘다다익선’을 구성한 TV 전체는 기증처인 삼성전자 제품이었다. 당시 돈으로 3억원 상당이다. 삼성 제품이었으므로, 2000년대 초만 해도 삼성 핸드폰에 내장된 TV 리모컨 작동 기능으로 관람객들이 장난을 자주 쳐 작품 관리에 고초를 겪기도 했다. 영상 재생을 위해 직원이 일일이 30분마다 비디오테이프를 갈아 끼웠으나, 이제는 화면 속 작품 8점 모두 디지털로 변환됐다. 이런 변화의 역사가 아카이브로 정리돼 내년 2월까지 전시된다. 미술관 측은 “작품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다다익선’은 매일 2시간, 주 4일만 가동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