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열 컬렉션

권력의 초상은 아첨한다. 그래서 그것은 대개 결점을 감춰 권위를 극대화하는 성화(聖畫)에 가깝다.

여왕 즉위 50년을 앞두고 있던 엘리자베스 2세(1926~2022)의 얼굴을 영국 사실주의 화가 루치안 프로이트(1922~2011)는 정반대 방식으로 그렸다. 초점 약한 눈, 깊게 팬 주름, 미소 없이 굳게 닫힌 입술…. 게다가 그림은 웅장하긴커녕 손바닥만 한(15.2×23.5㎝) 크기다. 인간 신체의 흠을 노골적으로 묘사해온 거장의 그림이 2001년 발표되자, 일각에선 화가를 투옥시켜야 한다는 반응까지 나왔다.

영원을 상징하는 다이아몬드 장식 왕관은 화면에서 절반이 잘려나갔다. 보석 목걸이도 마찬가지다. 그림이 드러내는 건 권세가 아닌 과중한 책임과 함께 늙어가는 한 여성이다. 화가는 그림을 위해 여왕과 19개월에 걸쳐 대면했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지만, 그가 주목한 건 무의식이 아닌 눈앞에 놓인 육체였다. 여러 혹평 속에서도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디언 등은 “지금껏 그려진 여왕의 초상화 중 가장 정직하다”고 평했다. 자신의 고독한 얼굴을 여왕은 왕실에 소장했다. 다음 달부터 런던 내셔널갤러리에서도 전시될 예정이다.

지난 8일 여왕은 70년 동안 쓴 왕관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시간은 인간에게 아첨하지 않고, 누구든 때가 되면 떠나야 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알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