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야기를 좀 할까요?
아트바젤과 함께 세계 2대 아트페어로 불리는 ‘프리즈 서울’ 개최로
서울이 떠들썩했던 한 주였습니다.
국제적인 아트페어가 열리면
갤러리와 경매 회사들도 이에 맞춰 진용을 재정비하고 전시를 열죠.
프리즈 서울 기간에 서울을 방문한 전세계 컬렉터와 미술관 관계자들에게 선보이기 위한
전시가 여기저기에서 열렸습니다.
예전엔 홍콩에서나 볼 수 있었던 광경을 서울에서 만날 수 있다니 신기하면서도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2019년 서울시립미술관 개인전으로 넉 달간 관람객 37만5000명을 모은
영국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85),
많이들 기억하실 겁니다.
경매회사 크리스티가 이번 프리즈 서울 기간에 서울 청담동 분더샵에서 전시회를 열고
10월 런던 경매에 출품할 호크니의 초기작을 9월 3~5일 딱 사흘간 선보였습니다.
제목은 ‘이른 아침, 생트 막심’. 1969년작으로 호크니가 30대 초반에 그린 그림이에요.
보통 이런 대작이 경매에 나오면
경매사들은 전세계 컬렉터들에게 이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해외 순회전시를 하는데요.
이번엔 서울에서 그 전시가 첫 테이프를 끊었지요.
해외 전시를 거쳐 런던에서 전시되는데 런던에서도 1970년 이후 처음 대중에게 선보인다 합니다.
호크니는 열한 살 연하의 동성의 연인 피터 슐레진저의 관계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2018년 11월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선 호크니의 1972년 작 ‘예술가의 초상’이
9030만달러(약 1019억원)에 낙찰되며
당시 생존작가 경매 기록 최고가를 달성했는데요.
그림 속 붉은 재킷을 입은 남자의 모델이 슐레진저입니다.
호크니는 슐레진저와 이별한 직후 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죠.
‘이른 아침, 생트 막심’ 역시
경매 추정가가 700~1000만 파운드(한화 약 109억~156억)이라고 합니다.
비싸게 팔리면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기야 좋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그림값보다는
어떤 그림이 얼마나 마음에 많은 파문을 불러일으키느냐가 더 중요하겠지요.
호크니는 말했습니다.
제가 전시장에서 찍은 그림이에요.
호크니는 1968년 가을 슐레진저와 떠난 남프랑스 여행에서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리비에라 해안가 위로 해가 떠오르며 드리우는 밝은 빛을 담아냈지요.
이 바닷가는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모네와 시냐크 등도 즐겨 찾았던 곳.
인상파의 시발점이 된 모네의 그림 ‘인상, 해돋이’와 비슷한 느낌이 드나요?
수영장 풍경 등 물을 소재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렸던 호크니의 특장점이
이 작품에서도 여과 없이 드러나지만,
관람자의 마음을 휘어잡는 건
핑크빛 하늘, 연두빛과 자주빛이 어우러진 물 위에 드리운
태양의 찬란한 그림자,
빛나는 윤슬의 화사한 색조에서 엿볼 수 있는
사랑하기에 행복한 화가의 마음이겠지요.
비록 비극으로 끝날지라도,
누구에게나 사랑의 도입부는 달콤하고 화사한 그림으로 남아있지 않습니까?
실물을 보여드리지 못해 안타깝네요.
화면이 그저 아리따운 빛으로 가득하답니다.
거장 호크니가 아닌 청년 호크니의 환희가 그림에서 흠뻑 묻어납니다.
제가 찍은 세부 사진이에요.
데이비드 호크니에 관심이 있는 독자 여러분께
관련 된 책 몇 권 추천해 드립니다.
데이비드 호크니 작품에 대한 개설서로 좋은 입문서이고요.
호크니와 그의 친구 미술사학자 마틴 게이퍼드와의 대담집 ‘다시, 그림이다’.
개념미술의 시대에 구상회화를 그리는 보기 드문 작가인 호크니의 예술론을 엿볼 수 있습니다.
팬데믹이 닥친 2020년
남프랑스의 작업실에서 역병에 지지 않고 꿋꿋이 그림을 그린
호크니가 게이퍼드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책,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입니다.
몹시 비바람이 부네요.
태풍으로 전국이 떠들썩합니다.
부디 이 빗속에서 무사하시길.
비 그치고 하늘이 개면,
자연은 다시 호크니의 그림같은 풍경을 우리에게 보여줄 겁니다.
곽아람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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