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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미술 축제, 베네치아비엔날레 127년 역사상 가장 거센 여풍(女風)이 불어닥쳤다. 세계 최대 미술 축제 최고상 역시 모두 여성 작가에게 돌아갔고, 올해 비엔날레 콘셉트를 집약해 보여주는 본 전시 초청 참여 작가 213명 중 약 90%(188명)가 여성이었다. 1895년 비엔날레 창설 이래 가장 극적인 성비 역전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올해 행사는 23일 공식 개막했다.
이날 발표된 본 전시 황금사자상 수상자는 미국 조각가 시몬 레이(55)였다. 원시적 생명력을 뿜어내는 대형 흑인 여성 동상 ‘Brick House’가 본 전시장 맨 앞에 전진 배치돼 포문을 열었고, 미국관 대표 작가로도 선발돼 가장 성실한 노동 주체로서의 여성을 구상(具象)으로 드러내는 청동·도자기 작품을 선보여 호평받았다. 국가대표 대항전 성격의 황금사자상은 영국관 작가 소냐 보이스(60)가 차지했다. 역대 영국관 첫 흑인 여성 작가다. 다섯 명의 흑인 여성의 목소리를 아카펠라로 합친 영상과 조각·설치 등을 통해 영국 음악사(史)의 여성을 재조명한다. 이번 수상 결과는 미술계에서 ‘여성’이라는 키워드가 명실상부 주류로 떠올랐음을 보여준다.
올해 전시 주제를 쉽게 압축하면 ‘인류의 확장’으로 볼 수 있다. 괴물을 연상케 하는 초현실주의적 존재를 즐겨 그린 여성 화가 리어노라 캐링턴(1917~2011)의 책 ‘The Milk of Dreams’에서 빌려온 전시 제목처럼, 기성의 상상력을 전복하는 ‘또 다른 존재’의 이미지를 통해 미래주의와 페미니즘 시각까지 끌어들이는 전략이다. 한국 여성 설치미술가 정금형(42), 이미래(34)씨도 초청됐다. 짐승 내장처럼 내걸린 초벌 도자기 위로 유약이 끊임없이 흘러내리도록 설계한 으스스한 대형 신작 ‘끝없는 집’을 공개한 이씨는 “올해 전시는 여성 작가가 대부분인 데다 공예풍의 작품이 많아 감성적인 느낌이 강하다”고 말했다.
이례적으로 본 전시 참여 작가의 절반 가까운 88명이 사자(死者)였다. 역사 속 여성주의 주요 인물이 대거 포진해있다. 생존 여성으로 처음 루브르박물관에서 전시했던 우크라이나 출신 화가 소니아 들로네(1885~1979) 같은 미술계 인사 외에도 ‘페미니스트 선언문’ 썼던 시인 미나 로이(1882~1966) 등 새로운 세상을 보지 못한 채 눈감은 이들을 소환해, 일종의 ‘한풀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풍의 역풍을 막기 위한 보편성 확보에도 신경을 쓴 모양새였다. 죽음으로 향하는 인간의 변화는 막을 수 없고, 이것은 성(性)을 뛰어넘는다. 전시장 상당 범위를 성인 어깨 높이까지 흙으로 채워 모성(母性)으로서의 대지를 표현한 콜롬비아 여성 작가 델시 모렐로스(55)의 설치작 ‘지상낙원’처럼, 우리는 남녀 구분 없이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는 유구한 미래를 제시한다. 직전 행사였던 2019년 베네치아비엔날레 방문객은 약 60만명이었다. 코로나 회복기를 감안해 올해도 비슷한 인파가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