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진규 1967년작 테라코타 ‘재회’(70.5x71.5x36㎝). 첫사랑 도모에 대한 그리움을 유추할 수 있다. /ⓒ권진규기념사업회·이정훈

누구에게나 천사가 필요하다. 한국 근대 조각을 대표하는 권진규(1922~1973)에게 그 천사는 여인이었다.

선자·명자·상경·영희…. 그가 빚어낸 여인상(像)은 모두 실제 인물이다. 탄생 100주년을 맞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5월 22일까지 열리는 대규모 회고전에서도 여인상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대표작 ‘지원의 얼굴’(1967)을 비롯해, 소장자 김현옥씨에게서 잠시 빌려온 ‘현옥’(1968)에 이르기까지 실명(實名)을 제목으로 삼은 상반신이 단정한 이목구비를 드러내고 있다. 이 여인들은 누구이고, 왜 여인이어야만 했는가.

권진규가 제자 및 제자의 친구들을 모델로 제작한 여인상.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상경'(1968), '지원의 얼굴'(1967), '선자'(1966), '남명자'(1966). /정상혁 기자·국립현대미술관

전시 개막과 동시에 출간된 권진규의 외조카 허경회 권진규기념사업회 대표의 평전 ‘권진규’에도 같은 의문이 등장한다. 허 대표는 그 해답으로 현실적 이유를 제시했다. 권진규는 대세와는 달리 구상(具象)을 고집한 작가였고, 현실의 존재가 필요했다. “시간강사 출강비로 겨우 생계를 꾸려가던 처지였으므로 모델 비용을 조달한다는 건 언감생심이었다. 그래도 시간강사 자리가 그에겐 생명줄이었다… 그에게 젊은 학생들을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 당시 미대 대다수를 차지하던 여학생들은 기꺼이 모델이 돼줬다.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가 아는 권진규와 그의 작품들은 없었다.”

이번 전시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천재’라는 상투적 수식 너머 권진규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전시 제목 ‘노실(爐室)의 천사’는 조선일보 1972년 3월 3일 자에 실린 권진규의 시에서 따왔다. “진흙을 씌워서 나의 노실에 화장하면 그 어느 것은/ 회개승화하여 천사처럼 나타나는 실존을 나는 어루만진다.” 그에게 작업은 “모델+작가=작품”의 공식으로 이뤄졌다. “모델의 내적 세계가 투영되려면 인간적으로 모르는 외부 모델을 쓸 수 없다.” 단순한 피사체가 아닌 것이다. 작가가 경외한 이중섭에게서 영감을 얻은 ‘흰소’, 방탄소년단 리더 RM의 소장품 ‘말’ 등 동물상도 다수 출품됐다.

권진규의 현존 작품 중 가장 오래된 1951년작 석고 조각 '도모'. 첫사랑 도모를 모델로 삼아 제작했다. /ⓒ권진규기념사업회·이정훈

가장 중요한 첫 모델은 첫사랑이자 아내였던 일본인 오기노 도모(1931~2014)였다. 유학 시절 만난 그녀를 권진규는 1951년 본인의 첫 작품(’도모’)으로 남겼다. 그러나 독자적 작풍을 위해 1959년 홀로 귀국했고, 이후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자, 권진규의 장인이 1964년 우편으로 이혼 서류를 보냈다. 그것으로 끝이었으나, 잊지는 못했다. 이듬해 도쿄 개인전을 위해 권진규는 1967년 도모와 자신을 투영한 조각 ‘재회’를 제작했다. 전시 첫날 화랑에 찾아온 도모는 권진규를 보자마자 “권상, 바보”라고 크게 소리쳤다. 천사와의 생전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리스 여신을 연상케 하는 두 인물이 전시장에서 지금도 서로에게 손을 뻗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