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격 혹은 탄식.
“헐”이라고 내뱉을 수밖에 없었던, 한 해의 온갖 기억이 뇌리를 스쳐간다. 예상 밖의 즐거움과 예상대로의 더러움 앞에서 당황한 혓바닥이 찾아낸 자음과 모음. 끝내 터져 나온 말이 “헐”이었다. 세상에.
2인조 미디어아트 작가 태싯그룹(장재호·이진원)이 간파한 올해의 단어 역시 ‘헐’이었다. 한글을 소재로 음악과 시각 효과를 나타내 주목받은 이들은 최근 어른 키만 한 검정 패널 위에 LED 전구 345개를 일정 간격으로 박아넣고, 10분간 끊임없이 불빛의 배열이 달라지도록 설계해 다양한 글자 혹은 문양을 드러내는 10분짜리 설치 작품을 제작했다. 점점의 불빛이 ‘어’ ‘와’ ‘왜’ 등을 거쳐 ‘헐’로 변화한다. 서울 이태원 P21 개인전에서 다음 달 15일까지 선보이는 신작(’LED, 15X23, E27, 20211217′)이 갤러리 쇼윈도에서 반짝이고 있다.
장재호 작가는 “한글의 건축적 특성을 보여주는 작업”이라면서도 “글자에는 의미가 담길 수밖에 없으니 여러 뉘앙스가 녹아 있는 단어로 골랐다”고 말했다. 불빛이 글자가 됐다가, 무너지고, 다시 글자를 이룬다. 획의 변화와 호응하며 짧은 전자음이 울려 퍼진다. 모름지기 놀라움은 눈과 귀 모두 뜨이게 하는 법. 작품 속에서 ‘헐’이 점차 ‘쿵’으로 바뀔 때, 누군가 목덜미 잡고 쓰러지는 이미지를 상상하게 된다. 전시는 이례적으로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열린다. 빛이 드러나려면 어두워야 하니까.
시장 반응도 감탄사를 자아낸다. 한글 세 개(헐헐헐)가 움직이는 1분짜리 영상을 NFT(대체 불가능 토큰)로 제작한 작품 ‘헐헐헐’이 지난 4일 약 4000만원에 판매됐기 때문이다. “올해 가장 각광받은 이슈가 가상화폐였잖나. ‘헐헐헐’ 세 글자는 급등락을 반복했던 비트코인·이더리움·도지코인을 의미한다.” 이번 개인전 신작 판매가는 5000만원으로 책정됐다. 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