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 구석 바닥 근처에 붙어있는 1만원권 지폐. 어엿한 작품이지만, 전시 폐막 직후 파기될 운명이다. /정상혁 기자

미술관 구석, 1만원짜리 지폐가 붙어있다. 눈이 번쩍 뜨인다.

바닥 부근이라 다소 어정쩡한 자세로 봐야 하는데, 실제 지폐에 “THESE FROZEN MOMENTS OF TIME WILL NOT STAY IN MIND FOR LONG”이라는 사인펜 글씨가 적혀있다. 장난 같지만 엄연한 미술 작품. 영국 개념미술가 라이언 갠더(45)는 ‘기록하기엔 너무 모호한 아이디어’(2021)라는 제목을 붙였다. 돈은 영원한 ‘미끼’다. 관람객은 이 한 장의 종이 앞에 잠시 눈을 빼앗겨 재화로서의 돈과 그 실질적 가치에 대해 자문하지만 “이 얼어붙은 시간이 마음속에 오래 머물지는 않을 것”이라는 메모처럼 이윽고 자리를 뜨게 된다. 주최 측은 “전시가 끝나면 실시간 화상으로 작가 입회하에 작품(돈)을 파기할 계획”이라고 했다.

20파운드 지폐가 보이는가? 라이언 갠더 '난 다시는 뉴욕에 가지 않을 거야'(2016). /스페이스K 서울

갠더의 개인전이 마곡동 ‘스페이스K 서울’에서 9월 17일까지 열린다. 일상의 사물을 전혀 다른 맥락에 가져다 놓음으로써 충격과 메시지를 발생시키는 인기 작가다. 전시장에서 또 다른 돈을 발견할 수 있다. 벽에 작은 쥐구멍을 파놓고 20파운드 지폐를 꽂아놓았는데,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자(쥐)에게는 돈 역시 그저 단열재로서의 종이일 뿐이다. 제목(난 다시는 뉴욕에 가지 않을 거야·2016)에서 드러나듯 현대미술의 중심을 자처하는 뉴욕 화단, 작품성 대신 인맥과 허황된 상찬으로 시장 가치가 책정되는 미술계에 대한 환멸을 담고 있다. 지폐가 구멍 속 모터에 의해 바스락거리며 조금씩 움직인다. 이 단출한 설치 작품은 그러나 보험가 기준 약 4000만원이라는 또 한번의 충격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