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처는 지명(地名)이 아니다. 그러나 그곳이 어딘지 알고 있다.
‘숲의 화가’로 불리는 빈우혁(40)씨는 인적 드문 베를린의 숲, 고여 말없이 일렁이는 수련 연못을 떠올렸다. 2년 전 독일로 영구 이주한 화가는 코로나 사태로 산책마저 어려워지면서 기억 속 녹음(綠陰)을 화면에 옮기기 시작했다. 빈씨는 본지 통화에서 “사람 만나는 걸 극도로 조심하다 보니 밖에 거의 나가지 않았다”며 “예전에 봐둔 풍경을 상상하며 스스로 위안했다”고 말했다. 그림에 그는 ‘안식처(Sanctuary)’라는 제목을 붙였다.
캔버스 8점으로 구성된 이 수련 연못 연작은 전시장 벽면을 반원으로 에워싸며 15m 길이로 늘어서있다. 프랑스 파리 오랑주리미술관에 영구 설치된 모네의 ‘수련’ 연작을 떠올리게 한다. 물 위로 피어나는 빛과 음영, 이 번짐의 풍경에 둘러싸여 관람객은 잠시 말을 잃게 된다. 전시는 서울 한남동 갤러리바톤에서 23일까지 열린다.
즉각적인 서정을 유발하는 색의 연쇄, 그러나 화가는 7년 전까지도 “물감 살 돈이 없어” 목탄으로 그림을 그렸다. “공모전에서 지원금 받아가며 겨우 색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대학 다닐 때는 다소 과격한 표현주의적 그림을 그렸다. 삶이 힘드니 그림도 힘들어지더라. 악순환이었다. 안되겠다. 마음이 편해지는 풍경을 그리자.” 그는 안식처로 향했다. 멀지 않은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