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전시장에 쓰레기 더미가 전시돼 있다. 직전 전시에서 나온 3t 규모의 폐기물이다. 환경 문제와 관련한 미술계 내부를 성찰하는 시도다. /정상혁 기자

미술 전시를 한번 열면 t(톤) 단위의 폐기물이 나온다.

지금 부산현대미술관에는 3t 정도의 쓰레기가 ‘전시물’로서 전시장 구석에 쌓여있다. 직전 전시에서 사용된 가벽을 부숴 담은 자루 더미와 철골과 각목 등이다. 미술관을 “죄책감 없는 파괴의 장소”로 조명하는 이례적 시도이자, 치유 공간을 자처하는 미술관의 자아 비판인 셈이다. 미술관 측은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기에 조직 내부의 반대 목소리도 있었다”면서도 “미술계에 경종을 울리는 차원에서 진행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 ‘지속가능한 미술관’은 지난해 열린 부산비엔날레가 촉발했다. 최상호 학예사는 “비엔날레가 끝나고 남은 쓰레기를 보고 충격이 컸다”고 말했다. 그래서 최소의 파괴를 지향한다. 석고 보드로 마감하지 않은 재활용 합판으로만 공간을 구획한 이유다. 전시장에 붙은 모든 설명문은 기계 인쇄 대신, 이면지에 펜으로 쓴 손글씨다. 코로나 이후 사용된 마스크 1만5000여장을 고열로 녹여 만든 간이의자 ‘팬데믹 안에서’(김하늘), 수조에 담긴 이끼 낀 자동차 엔진 ‘되찾다’(조재선) 등 회화·조각·설치 90여점 대부분 환경과 재생을 직접 상기시킨다. 미술관 입구 바깥에는 새 둥지처럼 생긴 거대 나뭇조각 ‘호흡’(박봉기)이 자리 잡고 있다. 직전 전시에서 배출된 각목 등을 결합해 만든 것이다.

영국 작가 월리드 베시티가 구리 상자를 택배 박스 크기로 제작해 런던에서 부산으로 배송한 ’24인치 구리'(위)와 한국 작가 김하늘이 개당 폐마스크 1만5000여개를 녹여 만든 간이의자 '스택앤스택'(팬데믹 안에서). 환경 문제를 건드리는 미술적 접근이다. /부산현대미술관

탄소 배출 억제 실험도 진행 중이다. 그 중심에 ‘작품 운송’ 문제가 있다. 외국 작가의 출품작이 7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미술관 측은 “항공 운송의 경우 뉴욕서 부산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6t 정도”라고 했다. 캐나다 화가 줄리엔 세칼디의 630×891㎝ 대형 그림 ‘쇼핑 사마귀’는 그래서 이미지만 온라인으로 전송받아 A4 용지로 출력해 모자이크처럼 벽에 붙여 전시했다. 미국 개념미술가 숀 라스펫은 미술관 측 의뢰로 현지에서 스위스 회사와 협업해 1t 분량의 이산화탄소를 채집한 뒤 이를 지하에 저장해 광물로 전환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페덱스 택배 박스 크기의 빈 구리 상자를 제작해 런던서 부산으로 보내, 찌그러지고 산화돼 도착한 수화물을 보여줌으로써 운송의 민낯을 드러내는 영국 작가 월리드 베시티의 ’24인치 구리'도 9월 22일까지 전시장에 놓여있다.

작품을 선박으로 운송 시 탄소 배출은 4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지지만, 배송 시간은 4배가 된다. 미술관 측은 “대부분의 미술관이 항공 운송을 선호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