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중 단일 작가로는 작품 수가 가장 많은 유영국 화가의 대표작 '산'(1968).

‘이건희 컬렉션’ 덕에 국립현대미술관은 개관 이래 처음 소장품 1만점 시대를 열게 됐다. 윤범모 관장은 “처음 기증 얘기가 나왔을 때 근대 대표작 100점만 와도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동서고금을 망라하게 됐다”고 말했다.

기증품 1488점은 크게 한국 작품(238명) 1369점, 외국 작품(8명) 119점으로 나뉜다. 외국 작가는 고갱·모네·르누아르·달리·피사로·샤갈·미로·피카소다. 장르별로는 서양화(412), 판화(371), 한국화(296), 드로잉(161), 공예(136), 조각(104), 사진(5), 영상(3) 순이었다. 제작 시기로 나누면 근대로 분류되는 1950년대 이전 작품이 약 860점으로 58%를 차지했지만, 10년 단위로는 1980년대(278점) 작품이 가장 많았다.

청전 이상범 '무릉도원도'(1922). 100년만에 처음 공개된다.

작가별 최다 작품은 화가 유영국(187점)이었다. “시리즈로 구성된 판화 작품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이중섭(104점), 유강열(68점), 장욱진(60점), 이응로(56점), 박수근(33점), 변관식(25점), 권진규(24점) 등이 뒤를 이었다. 한국 미술사(史)에서 자취를 감췄던 희귀작도 대거 확인됐다. 문인 겸 화가 나혜석(1896~1948)의 그림 ‘화녕전작약’(1930년대)이 대표적이다. 수원 고향집 근처 화녕전(華寧殿) 풍경을 빠른 필치로 그린 이 작품에 대해 미술관 측은 “진위가 확인된 나혜석의 그림은 10점도 안 될 만큼 극소수”라고 했다. 풍문으로만 존재하던 청전 이상범(1897~1972)의 ‘무릉도원도’(1922)는 100년 만에 처음 일반에 공개된다. 전하는 작품이 모두 4점뿐인 김종태(1906~1935)의 유화(‘사내아이’), 장욱진(1917~1990)이 1937년 조선일보 주최 ‘전조선학생미술전람회’에서 최고상을 받은 ‘공기놀이’(1937)도 기증 목록에 포함됐다.

나혜석 '화녕전작약'(1930년대). 현존 작품이 10점이 채 안되는 나혜석의 희귀작이다.
장욱진 '공기놀이'(1937). 조선일보 주최 제2회 '전조선학생미술전람회' 최고상 수상작이다. 이 작품 덕분에 장욱진은 화가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이당 김은호(1892~1979)의 초기 채색화 ‘간성(看星·1927)’, 운보 김기창(1913~2001)의 5m짜리 대작 ‘군마도’(1955) 등 대표작도 다수였다. 그러나 아직 기증품 조사 연구 과정은 완료되지 않았다. “우리 미술관이 1년에 처리하는 조사·연구 작품 수가 200~300점 수준인데 이번에 1500점 가까이 한꺼번에 들어와 대응이 급박하다”며 “미술관 업무 체질 개선에 획기적 계기가 됐다”고 했다.

현재 미술관 수장고는 거의 포화 상태다. 박영란 소장품자료관리과장은 “현재 수장률이 93% 정도”라며 “추가 수장 공간 확보를 위해 관련 부처와 협의 중”이라고 했다. 지자체마다 잇따라 건립을 요구하는 ‘이건희 미술관’ 추진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 측은 “‘이건희 미술관'이 될지 ‘국립근대미술관’이 될지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