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의 미술품 수집 원칙은 “작가의 대표작은 가격 따지지 않고 산다”는 것이었다.
이번에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281x568㎝)는 한국에서 가장 비싼 화가로 흔히 거론되는 김환기의 그림 중에서도 최대 규모로, 환기미술관 관계자조차 그 향방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대작(大作)이다. “만약 경매에 나온다면 한국 미술품 최고가(약 132억원) 경신이 충분히 가능한 그림”이라고도 귀띔했다. 이 회장은 화랑가 주요 인사를 통해 작품을 수소문했는데, 이 그림 구입에 관여한 한 갤러리 대표는 “본래 삼호 정재호 회장이 김환기에게 주문한 작품으로 자택 벽 크기대로 캔버스를 짜 그린 것”이라며 “1980년대 이 회장에게 그림의 존재를 보고하자 즉시 구매 의사를 보였다”고 말했다.
이 회장과 부인 홍라희 전(前)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은 수집 동반자이기도 했다. 이들이 컬렉션을 처음 시작한 것은 결혼 후 미국에 다녀온 1970년 이후로, 부부의 컬렉션 1호가 바로 이번에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겸재의 ‘인왕제색도’다. 홍 전 관장은 과거 인터뷰에서 “저희 부부가 최초로 산 미술품은 서예가 소전 손재형씨가 수집한 작품들인데 ‘인왕제색도’ 같은 명품이 포함돼 있었다”며 “회화나 고졸한 도자기의 맛이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그때부터 전문가들에게 배우기 시작했다”고 말한 바 있다.
문화계에선 “컬렉션 ‘1호’를 포함, 국보·보물을 60건이나 기증했다는 것은 이번 기증의 참뜻을 보여주는 중요한 대목”이라 평가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국보·보물 등 지정문화재는 상속세가 비과세된다. 상속세를 피하려는 꼼수로 기증을 결심한 게 아니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