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작 '제주 생활의 중도'(99.8x199.5cm ). /가나아트

그럴 수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

화가 이왈종(76)씨는 동백과 유채가 흐드러진 제주의 봄을 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3년 전 갑자기 닥쳐온 교통사고, 지난해부터 지구를 휩쓴 감염증 앞에서도 꽃은 피었다. 고개 주억거리며 붓을 들었다. 풍경화에 사람과 말풍선을 그려넣고는 “그럴 수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라고 적었다. 이 짧은 대사 하나가 경관을 일순 만화적으로 전환한다.

‘제주 생활의 중도(中道)’ 연작으로 유명한 이씨지만, 이처럼 그림에 글씨를 넣은 건 처음이다. “언제까지 비관에 사로잡힐 수는 없다”고 그는 말했다. 번잡한 교수직을 버리고 서귀포로 낙향한 지 30년. 미움도 집착도 내려놓는 중도적 삶의 태도처럼, 화면에서 자연과 사람이 원근감 없이 어울린다. “사랑과 증오는 결합해 연꽃이 되고, 후회와 이기주의는 결합해 사슴이 된다…”는 화가의 논리 앞에서 아름답지 않은 것은 없다. 그림 군데군데 금박이 불화(佛畵)처럼 성스러운 기운을 뿜어낸다. 서울 한남동 가나아트 나인원·사운즈에서 28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