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남 '박자혜 초상'(210x94cm). /학고재

“당신은 뜻을 못 이루고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겠다고 하시더니 왜 이렇게 못난 주제로 내게 오셨습니까. 분하고 원통하지 않으십니까?”

단재 신채호(1880~1936)는 역사에 깊이 남아있다. 그러나 아내 박자혜(1895~1943)는 깊이 잊혀 있다. 조선총독부의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다 3·1운동 당시 부상한 동족을 치료하며 민족적 울분을 느끼고 독립운동에 투신한다.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파 거사를 도왔고, 두 아들을 건사하며 남편을 옥바라지했다. 병든 그는 해방 2년을 앞두고 홀로 눈을 감았다.

화가 윤석남(82)이 복원한 그림 속에서 박자혜는 왼쪽 상단의 남편보다 거대한 골격으로 서있다. 실제 사진을 보고 연필 드로잉을 제작한 뒤, 한지 위에 채색화로 상상을 덧대 그린 것이다. “남편 유해가 담긴 작은 상자를 들고 슬픔을 참으며 분노하는 표정”이라고 했다. 손이 유독 크고 거칠게 표현돼있다. “손은 사람이 가장 많이 쓰는 부위이며 인물의 삶을 가장 진솔하게 보여주는 신체 부위다. 내 손도 작업하며 뒤틀려 크고 투박하다.”

첫 여성 비행사 권기옥, 임신한 몸으로 평남도청 등에 폭탄을 던진 안경신 등 여성 독립운동가 14인의 대형 초상화가 서울 소격동 학고재에서 4월 3일까지 전시된다. 이매창·허난설헌 등 조선의 여성을 향하던 윤석남의 시선이 근대로 옮겨온 것이다. 화가는 “100인의 초상을 완성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