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진 전시를 연 유나얼 작가가 전시장에 앉았다. 핸드폰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들이 뒤편에 걸려있다. /인넥스트트렌드

서울 망원동에서 명동 집까지 가는 밤, 간선버스 맨 뒷좌석에서 유나얼(43)씨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두워지자 본색을 드러내는 빛을 그는 휴대폰 카메라에 담았다. “무심코 지나칠 법한 풍경을 주로 촬영한다. ‘이걸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대부분 빛 때문이었다. 어떤 빛은 평범한 것에 특별한 감각을 부여한다.”

가수 ‘나얼’로 잘 알려진 유씨는 첫 사진집 출간과 함께 첫 사진전 ‘Reaction to Light’를 서울 성북동 ‘오트'에서 열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틈틈이 올리던 사진을 작품으로 선별한 것이다. 제목처럼 ‘빛’이 야기한 생경한 찰나의 기록이다. 유씨를 만난 2일, 그는 최근 뺀 사랑니 탓에 치과에 다녀온 길이었다. “10년 동안 묵혀둔 매복니”라고 했다. 일련의 사진 역시 “10년 전부터 틈틈이, 대부분 휴대폰으로 촬영한 것”이다. 문래동 구두수선집 셔터, 에버랜드 비눗방울, 땅바닥에 찌그러진 콜라캔 등이다.

지난해 서울 문래동 구두수선집 셔터를 촬영한 '문래동 분홍 셔터'. /ⓒ유나얼
찌그러진 콜라캔과 과속방지턱 색감을 대비시킨 사진 ’콜라'. /ⓒ유나얼
독일 베를린시(市)가 기증해 서울서 전시됐던 베를린 장벽을 촬영한 '베를린벽 서울'. /ⓒ유나얼

빛이 자아낸 묘한 색감이 아무것도 아닌 것에 묵상의 순간을 건넨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유씨는 “빛은 항상 우리와 함께 있지만 빛 중에서도 ‘참빛’(True Light)에 반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시장에 빈 밥솥을 하나 갖다 놓고는, 성경 구절이 적힌 종이 카드를 넣어 관람객들이 가져가게 뒀다. “영혼의 밥”이라고 했다. 전시는 3월 21일까지 열린다.

유씨는 미술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중학교 때부터 붓을 잡았고, 단국대 미대를 나와 화가·설치미술가로 개인전만 11회 열었다. “집안 내력이다. 고모·이모 모두 그림 그리신다. 어릴 적부터 꿈이 화가였고, 운명이라고 여겼다. 한번도 미술 활동을 쉰 적이 없다.” 그러나 가수로 더 유명해지면서 두터운 대중적 편견을 마주해야 했다. “뭘 해도 ‘그냥 연예인 전시겠지’ 하더라. 인식을 바꾸는 건 포기했다. 다른 연예인이 미술 전시한다고 하면 나 역시도 선입견을 가지니까. 그저 미술이든 노래든 진지하게 하는 사람이라고만 봐주셨으면 한다.”

유나얼 작가가 전시장에 걸린 사진 '빛물땅'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해 강원도의 한 미술관에 들렀다가, 물이 고여있는 자갈밭과 메마른 자갈밭이 구획된 상반된 땅의 질감을 보고 필름 카메라로 담은 것이다. /인넥스트트렌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유나얼 작가가 어느 저녁 노을 지는 하늘과 첨탑의 십자가를 한 컷에 담아냈다. /ⓒ유나얼
전시장 한편에 놓인 유나얼 작가의 밥솥 안에 '빛'과 관련한 성경 구절이 적힌 종이 카드 수십장이 담겨있다. 관람객 누구나 가져갈 수 있다. /정상혁 기자

그가 관심 있는 것은 “버려지고 뜯겨진 사물의 이미지”다. “널빤지나 천 조각 등 버려진 여러 소재를 화면에 붙여내는 콜라주(collage) 작업을 즐겨 하는 탓인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사진이든 그림이든 비슷하게 대한다. 사진도 하나의 추상화처럼 느껴질 때 좋다. 다만 이번에 놀란 건 관람객들의 반응이다. 내 그림보다 사진을 훨씬 쉽게 받아들이더라. 시각적으로 즉각 이해되는 지점 때문인 것 같다.”

은둔형으로 알려져 있던 그는 최근 활발한 소통을 시작했다. 유튜브 채널 개설도 그 중 하나다. “중학교 때부터 모은 LP판이 1만장 정도 되는데 이걸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방송국 카메라 앞에서 노래하는 건 내키지 않아도, 이건 내 작업실에서 편안하게 음악만 틀면 되니까.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소통 방식이니까.” 동시에 올해 부산아트페어 등 미술 전시 참여도 준비 중이다.

그렇기에 “나얼과 유나얼은 한 몸이면서 또 다른 존재”다.


☞유나얼의 Pick

아침마다 성경 필사(筆寫)를 한다는 유씨. 어느날 글씨를 쓰려다 책상에 놓인 필름통에서 전날 자신이 넣어둔 마스크 고리를 발견했다. “본의 아니게 상징적인 장면이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촬영한 '마스크 고리'. /ⓒ유나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