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펜을 집어 들고 신문지에 계속 선을 긋는다. 까맣게 초벌한 면을 다시 연필로 덧칠한다. 양면의 언어가 모두 사라진 지질(紙質)이 불탄 숯처럼 보인다.
한글 특별전 ‘ㄱ의 순간’에 참여하는 최병소(77) 화가는 활자를 지워 망각 차원으로 인도한다. “신문에 인쇄된 모든 것을 볼펜과 연필로 지우는 게 내 작업의 전부다. 문자와 이미지를 없애 문명 이전으로 돌아가는 태도라 해석해도 좋다.” 당대의 정보를 검열하듯 모조리 지워내다 보니 ‘미술적 저항운동’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군사정권 당시 경찰서에 불려가 조사도 받았다. 정작 내 그림보다 동료들에 대해 더 묻더라.” 전시는 11월 12일부터 내년 2월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전관과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에서 열린다.
이런 창조적 파괴는 1975년 시작됐다. “화실도 없고, 물감 살 돈도 없고, 그림은 그려야겠고. 그러다 신문이 눈에 들어왔다. 볼펜도 굴러다니고. 뭔가를 그리고 색칠하는 게 미술이라 배웠는데, 둘 다 소질이 없으니 차라리 지우자, 해서 의도적으로 막 지웠다.” 소재로서 신문은 유년의 기억 저변에 계속 존재해왔다. “6·25전쟁 피란살이하던 국민학교 2학년 때, 교과서 제본소가 폭격으로 무너졌다. 한 학기 동안 신문지에 교과 내용을 인쇄해 나눠주더라.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공부하던 옛 기억이 무의식적으로 신문 작업에 영향을 준 것 같다.”
글자를 와해해 우주적 암흑으로 돌아가는 이 작업은 방법론이라기보다 태도에 가깝다. “고된 과정이다. 너무 지루해서 몇 년간 작업을 중단한 적도 있다. 내 그림에 형상은 없지만 형식은 있다. ‘나’라는 주체를 생각하지 않을 것. 숨 쉬거나 걸을 때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다. 습관처럼 하는 것이다.” 매체는 때로 신문지를 넘어선다. “프랑스 철학서 ‘의미와 무의미’를 구해서 다 쓴 볼펜으로 책 모서리를 계속 긁었다. 펜으로 상처 낸 책을 미술관에 전시했다. 이 행위가 곧 의미이자 무의미라는 차원이었다.”
요즘엔 인쇄 안 된 신문 용지 위에서 수행(修行)한다. “텅 빈 종이다. 활자 대신 하염없이 시간을 지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