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붓은 일종의 삽과 같다. 흙 덮인 고대(古代)의 형상을 출토한다. “사실 나는 발굴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미지의 퇴적층을 파내며, 잊힌 조형성을 복원하고 있다.” 화가 김혜련(56)씨가 말했다.
조선일보 창간 100주년 한글 특별전 ‘ㄱ의 순간’에 그는 ‘예술과 암호–고조선’ 대형 연작을 30점 출품한다. 신석기·청동기·삼국시대 등의 고대 유물을 찾아다니며 해당 문양에서 가장 최소의 윤곽을 거대한 화폭에 옮기고 있는 김씨는 이번 전시에서 ‘한글’에 대한 가장 유구한 고고학적 상상력을 보여주는 작가다. ‘고조선’ 연작은, 말하자면 그가 붓으로 재해석한 “고조선의 조형 언어”다. 전시는 11월 12일부터 내년 2월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전관과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에서 열린다.
빗살무늬 토기, 청동거울 다뉴세문경(多鈕細紋鏡), 곡옥(曲玉) 등을 통해 “직선과 곡선의 추상적 무늬, 기하문(幾何文)의 기원 추적”을 해오고 있다. “독일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갖게 된 한반도 분단 현실에 대한 흥미가 고지도(古地圖)와 역사의 관심으로 이어졌다”며 “최근 발굴된 유물을 보며 가장 압축적인 조형미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유물의 무늬는 당시의 상징 체계이자 암호다. 인간이 세계를 인식한 뒤 물성으로 뭔가를 표현할 때 작용하는 지각·미적 활동이 동시에 작동하는 순간이 거기 있었다.” 2014년부터 캠핑카로 개조한 낡은 버스를 구입해 전국 유적지를 누비고, 중국과 일본과 러시아까지 답사했다.
최근 고고학계에서 환대받고 있는 작가로, 화가로는 유일하게 2018년 서울 암사동 선사 유적 국제학술회의에도 참가했다. “빗살무늬 토기 표면의 빗금은 빗줄기, 그 밑의 삼각형은 구름이라는 학설이 있고 나 역시 거기에 동의한다. 이 같은 조형성은 고구려 기와 문양으로도 맥락이 이어진다. 시기와 위치는 달라도 흙에 남긴 감수성, 조형적 흐름이 있음을 알게 됐다.” 그 흐름에서 “한국 기하문의 뿌리”를 발견하고 ‘한글’과 기저로 연결된 끈을 캐올린다. “직선과 곡선의 품위 있는 결합·변주를 통해 무늬는 진화해왔다. 한글은 투명한 사각형 속에 오직 직선·점·원의 세 요소로 소리를 묶는 신비한 문양이다. 언어 공동체가 있듯 조형 공동체도 있다. 그 공동체적 미감(美感)이 한글이라는 최소한의 ‘문양’ 형성에 영향을 줬다고 감히 확신한다. 조선 사람은 고조선 사람의 후예 아닌가.” 이 연작은 당대를 증빙하는 실제 유물과 한 공간에 전시돼 공명하게 된다.
그림은 약 100호(160×130㎝) 크기 골판지에 먹으로 그렸다. “흙과 가장 가까운 빛깔의 물성 위에 먹이라는 우리 정신적 유산이 어우러지는 효과 때문”이다. 그것은 땅에서 막 꺼내 올린 물과 공기에 바래 이지러졌으나 정신으로 남아 계승되고 있는 어떤 형상처럼 보인다. 각 유물의 형상을 가운데 그리고, 둘레에 일곱 원을 배치했다. “고흥·강화·영천 등의 고인돌에 남겨진 북두칠성 조각의 흔적을 옮겼다. 문양에 집중케 하는 시각적 장치다.”
서울대에서 독문학을 전공했다. “내게 감동으로 다가오는 건 글이 아니라 언제나 이미지였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1990년 독일 베를린으로 가 국립베를린종합예술대학 학·석사, 베를린공과대학 예술학 박사를 취득했다. “유화를 주로 그렸으나 매일 30년간 먹 드로잉을 해왔다. 2000년 플렌스부르크에서 먹 드로잉만으로 개인전도 열었다. 나뭇가지 정물화를 나중에 보니 한글 자모(字母) 형상이더라. 현 작업의 씨앗이 엿보인다.”
지금도 그는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작업한다. “이 작업 이후 경제적 풍요로움은 포기했다”고 말했다. “팔리는 그림이 아니다. 계속 해야 하나 몇 번씩 자문했다. 이제는 내게 주어진 어떤 사명이라고 여긴다. 평생을 바칠 일이 생겨 감사하다.” 그러니 계속 파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