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한 고객이 현대백화점 판교점에 전시된 미국 작가 카우스의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정상혁 기자

“57억원입니다, 고객님.”

그림을 둘러보다 가격을 묻자 이 같은 답이 돌아왔다. 갤러리가 아니다. 백화점이다. 현대백화점 판교점 10층에 가면 일본 화가 구사마 야요이(91)의 대표작 ‘호박’ 그림을 보고 구매할 수 있다. 야요이는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가 집계한 올해 3분기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낙찰가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한국에서 인기 높은 작가지만, 백화점에서 그의 원화(原畵)가 판매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김환기 종이 드로잉부터 박수근 유화 ‘노상’까지 천경자·남관·윤형근·이우환·김창열·이강소·뱅크시·카우스·데미안 허스트 등 유명 작가 45인의 원작이 이 백화점 1층과 10층에 25일까지 전시된다. 백화점 내에 약 200억원어치 미술품 100여점을 비치해 갤러리나 아트페어처럼 꾸민 ‘아트 뮤지엄’ 행사다. 판화 및 복제화 등 이벤트 성격의 판매를 넘어, 고가의 유화·조각을 갤러리와 연계해 내놓고 본격 시장 개척에 나선 것이다.

11일 현대백화점 판교점에 전시된 윤형근 화가의 '무제'(1991)를 한 어린이가 쳐다보고 있다. 그 옆 작품은 문자추상 거장 남관의 1983년 유화다. /정상혁 기자

백화점의 갤러리화(化)는 문화 만족감을 추구하는 소비자, 이른바 ‘아트슈머’를 겨냥해 경기 불황을 타개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미술 시장에 익숙지 않은 고객을 백화점이라는 가장 대중적인 공간을 통해 새 수요로 끌어들인다는 복안이다. 롯데몰 광명점이 지난 5월 작가 28인의 작품을 판매·대여하는 ‘갤러리K’를 여는 등 일련의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아예 상설 미술품 전시·판매에 나섰다. 강남점 3층 명품관에서 지난 8월 처음 시작해 인기를 끌자 최근 150점으로 출품작을 늘렸다. 큐레이터가 상주해 작품도 설명하고, 요구에 따라 작품도 수시로 교체한다. 현재 가장 고가 작품은 마크 스완슨의 조각으로, 2억원이다. 신세계 미술관팀 관계자는 “구매력 갖춘 고객 대상으로 미술품 구매 진입 장벽을 낮춰 저변을 확대하려 한다”며 “후속으로 아트 컨설팅 사업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