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다른 갈림길에서 오른쪽은 묘지, 왼쪽으로 가면 미술관이다. 삶과 죽음이 지척에서 같은 이름을 공유한다.
묘지 옆 미술관, 경기 남양주 모란미술관이 개관 30년을 맞았다. 1990년 모란공원묘지 옆에 들어선 국내 최초의 조각 전문 미술관이다. 8600평 규모 널따란 부지에 심문섭·엄태정·최만린·루치아노 마사리 등 국내외 유명 조각가의 작품 120여 점이 들어서 있다. 여기서 조각상(像)은 오래된 묘비처럼 느껴진다. 야외에서 늙고 허물어지며 하나의 자연이 돼가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작은 새들이 내려앉거나 거미줄과 빗물이 엉겨 붙으며 조각을 확장한다.
사업하던 남편이 1987년 이곳 묘원을 인수했다. “땅을 둘러보다 ‘옆에 미술관 지으면 좋겠다’ 생각한 것이 시작이었다”고 이연수(76) 관장은 회고했다. 감상적인 접근이었다. 간혹 미술품을 수집하긴 했으나 전문 지식은 없었다. “화랑을 하기엔 물건 파는데 소질이 없고 그저 일본서 봤던 소박한 미술관 하나를 꿈꿨다”며 “조각 공원을 떠올린 것도 이 동네 자연 풍경이 좋아서였다”고 했다. 12명의 땅 주인에게서 일대 논·밭을 사들이는 데만 1년이 걸렸다. “겁이 없었기에 가능했다”고 했다.
개관 2년 뒤 국제 조각 심포지엄을 열었다. “네덜란드·체코 등에서 온 조각가 여덟 명이 3주간 먹고 자며 작업했는데, 체류비 전부를 댔다. 지금 하라면 절대 못 한다.” 작가 양성을 위해 1995년 ‘모란조각대상’을 제정했다. 전부 사비(私費)였다. 돈 없는 작가가 외국 갈 일 생기면 비행기표를 끊어주고, 차 없는 작가에게는 남편의 중고 자동차를 선물하기도 했다. 비주류로 인식되던 조각계에서 친정처럼 각별한 곳이 됐다.
이 미술관에는 프랑스 조각가 로댕의 ‘발자크’ 석고상도 소장돼 있다. 그러나 이 관장은 가끔 주변을 거닐며 “묘지만 한 조각은 없다… 봉분의 곡선에 견줄 아름다움은 없다”는 생각을 한다. 늘 가장 눈부신 건 자연이고, 그와 어울릴 때 비로소 예술이 탄생한다는 지론. 묘(墓)와 미(美)가 하나인 셈이다. 조각 공원에 작품을 남긴 작가 중 10여명이 세상을 떴고, 김영중·전국광 등 절반 가까이가 모란공원묘지에 안장돼 있다. 2002년 건축가 이영범은 설계비를 받지 않고 27m 높이 수장 공간 ‘수장고와 노래하는 탑’을 미술관에 지어줬다. 자신의 아버지가 모란공원묘지에 묻힌 인연 때문이다. 그 역시 2013년 이 묘지에 누웠다. 이 관장은 “이들이 미술관을 밤낮 지켜주고 있다”고 했다.
예술은 일생을 초월하지만, 미술관은 여전히 삶의 공간일 수밖에 없다. 매년 3억원 정도의 예산이 소요된다. “입장료 수익은 직원 두 명 월급 정도 나온다”고 한다. 1996년 서울 인사동에 열었던 미술관 부설 ‘모란갤러리’도 비용을 감당 못해 2008년 폐관했다. 올해는 매표소를 없애고 무인기기로 대체했다. “지금껏 남편 사업 수익으로 지탱해왔지만 오래 버티기 힘든 구조”라고 했다. 그래도 청소년 체험 교육 프로그램 ‘모란미술관학교’ 등을 무료 운영해오고 있다. “사립 미술관치고 안 힘든 곳이 어딨겠나. 앓는 소리 할 필요 없다. 누가 등 떠밀어 시킨 것도 아니니까.”
30주년 기념전이 10월 30일까지 열린다. 조각의 의미를 오랜 세월 천착해온 배형경·윤석남·최의순·최인수 작가의 4인전이다. 전시 제목은 ‘조각의 아름다움’으로 잡았다. “조각과 자연이 하나이듯 우리 삶도 죽음과 하나로 어울릴 때 완성되는 게 아닐까. 나도 이제 묘와 가까운 데 있다. 언젠가 저기로 갈 것이다. 여기서 소꿉놀이 실컷 하고 재밌게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