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중섭(1916~1956)은 가족을 즐겨 그렸으나, 그의 가족 그림에는 현실적인 배경이 표현되지 않는다. ‘가족’(1953~54)에서도 ‘춤추는 가족’(1953~54)에서도 남편과 아내와 두 아들이 정겹게 화면을 채우지만 정작 배경은 그저 몇 개의 선과 색으로 뭉갤 따름이다. 김이순 미술평론가는 “이중섭의 가족 그림 속에는 배경 없이 인물들만 한 덩어리로 부둥켜안거나 춤추고 있다”며 “서로 직접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 장소성이 결여된 환상의 세계를 표현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올해‘이중섭과 서귀포’세미나에서 김이순 미술평론가가 이중섭의 가족 그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귀포시

코로나 사태가 야기한 단절의 시대, 이중섭을 다시 돌아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15일 제주도 서귀포시청에서 ‘제23회 이중섭과 서귀포 세미나’가 열렸다. 관중 없이 비대면 녹화로 진행된 이번 세미나에서 이중섭과 가족을 화두로 제시한 김 평론가에 따르면, 이중섭의 가족 그림은 배운성의 ‘가족도’나 한묵·박고석·장욱진 등이 반복적으로 그린 가족 그림과 다르다. 배경 묘사가 결여된 까닭이다. 김 평론가는 “이중섭은 가난 등의 이유로 가족을 일본에 보내고 떨어져 있는 상황과 사실상 일정한 주거지도 없던 자신의 처지 탓에 구체적인 장소를 떠올리지 못하고 오직 가족과의 재회라는 환상만을 갖고 가족을 그린 것”이라고 추론했다.

이중섭은 자신의 가족을 대체로 누드로 그렸다. “모호한 배경에 누드로 그려낸 이미지는 비현실적이고, 이로 인해 현실의 비극과 차단된 태고적 이상향의 느낌이 배가된다”는 설명이다. 이중섭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이라는 가장 불행한 시기를 관통했다. 흔히 그를 ‘소’로 대표되는 민족혼의 화가로 일컫지만, 그의 가족 그림에는 그저 다시 만나고 싶다는 절절한 갈망만 묻어날 뿐이다. 그렇기에 “이중섭을 ‘민족 화가’라는 수식어로 신화화하는 것은 그의 진정성 접근에 방해가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또 다른 강연자로 나선 최정주 제주도립미술관장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미술관을 전망했다. “향후 미술관의 생존 전략은 대면과 비대면 정책을 균형 병행하는 방향일 것”이라며 “콘텐츠 전문화와 소셜미디어를 통한 관람객과의 온라인 접촉도 신경 써야 한다”고 했다. 한편 제주 이중섭미술관은 최근 이중섭의 ‘환희’ 등 원화 2점과 필사본 등 자료 14점을 확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