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김영수가 설계한 서울 둔촌동 주택. 하나의 벽돌을 여러 방식으로 쌓아서 일반적인 벽돌집과 다른 질감의 입면을 연출했다. /Joel Moritz

건축가 김영수(43)가 만들어온 공간은 정성껏 지은 쌀밥을 연상시킨다. 라면이나 치킨처럼 첫입에 ‘맛있다’는 느낌을 주진 않아도 씹을수록 풍미가 은은한 흰쌀밥. 그것은 라면과 치킨에 물린 뒤에 결국 찾게 될 음식이다.

건축가 김영수

최근 서울 율곡로 사무실에서 만난 김영수는 “은근히 아름다운 공간을 추구한다”고 했다. 은근(慇懃)이란 야단스럽지 않고 꾸준하다는 뜻. 단어 선택에서 지향점이 드러난다. “눈에 보이는 이미지도 물론 중요하지만 서서히 느껴지는 공간 본연의 힘과 분위기를 어떻게 드러내고 전달할지 고민합니다.” 이런 생각을 담은 작업으로 지난달 문화체육관광부의 젊은건축가상을 받았다. 수상자 3명(팀) 사이에 등위(等位)는 없지만 심사위원장은 총평에서 “심사위원 전원 일치로 김영수를 올해의 주목할 건축가로 선정했다”고 언급했다.

건축물에 쌀밥의 풍미를 담는 방법 중 하나는 자연의 변화를 담는 것이다. 제주에 설계한 숙박 시설 ‘수리움’이 그런 작업이다. “제주도는 빌딩에 가려지지 않은 하늘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곳이죠. 구름 끼고 비가 오는 날씨의 변화를 체감하기 좋은 장소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곳에서는 건축이 화려한 몸짓을 하기보다는 단순한 덩어리로 남아있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네모반듯한 매스(덩어리)는 시시각각 달라지는 빛을 머금은 캔버스처럼 보인다. 절제된 형태 안에서도 정교하게 계산한 비례가 단조롭지 않은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내부 역시 공간이 풍부하게 느껴지도록 바닥과 천장의 높이 등에 변화를 줬다.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알로하 도산'. 빛을 받는 방향에 따라 그림자의 모양이 달라지며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Joel Moritz

자연으로 변주(變奏)하는 건축은 도시에서도 가능하다. ‘알로하 도산’은 서울의 대표적 번화가인 압구정에 설계한 상업용 건물이다. 유리창 밖으로 깊이 60㎝ 외피를 덧씌우고 각도가 조금씩 다른 경사면을 수직으로 설치했다. “빛을 받는 각도에 따라 드리우는 그림자가 변하면서 건물 표정도 시시각각 달라집니다.” 서울 둔촌동 주택에서는 벽돌이라는 흔한 소재로 흔하지 않은 입면(立面)을 연출했다. 깨뜨린 벽돌의 거친 단면과 온전한 벽돌의 매끈한 단면을 섞고, 벽돌을 쌓는 방법과 줄눈의 모양에도 변화를 줬다. 벽돌 한 종류로 빚어낸 다채로운 질감이 건축물에 입체적 인상을 부여한다.

빠르고 즉물적이어야 통하는 시류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김영수는 “전에는 건물을 지을 때 비용이나 면적, 용적률 같은 것에만 관심을 뒀다면 최근에는 ‘좋은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문의가 늘고 있다”고 했다. 따라서 그의 건축은 우리 사회의 건축적 감수성이 서서히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로도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