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 아모레퍼시픽 사옥 설계로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영국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70)가 ‘건축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 올해 수상자로 8일 선정됐다. 치퍼필드는 독일 신(新) 베를린 박물관, 미국 세인트루이스 미술관, 일본 이나가와 묘지 예배당 등 전세계에서 작품 활동을 하며 건축계는 물론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심사위원단은 그의 건축이 “섬세하면서도 강력하고, 차분하면서 우아하다”고 평가하면서 “기후 변화에 대응하고 사회적 관계를 변화시키며,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건축을 통해 새 건물은 물론 복원 건축물의 기능성과 접근성을 새롭게 상상했으며, 건축물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에 대한 경외심을 드러냈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과장된 몸짓을 하기보다는 주변에 자연스럽게 순응하는 건축을 추구해온 치퍼필드 디자인의 키워드 중 하나는 ‘절제’다. 이런 ‘명상적 디자인’ 태도 역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불필요한 움직임, 트렌드와 유행을 피하는 것은 현대 사회에 가장 적절한 메시지”라는 것이다.
함께 소개된 대표작 중에는 오래된 건축물을 복원한 작업이 많다. 독일 신(新) 베를린 박물관은 19세기 중반에 지어져 2차대전 중에 파괴된 건축물을 되살린 프로젝트. 전쟁으로 훼손된 벽과 오래된 프레스코화의 흔적을 살려 건물의 역사를 드러냈다. 이탈리아 베니스의 16세기 관청 건물을 복원한 프로쿠라티에 베키에는 전통 장인들과 협업해 바닥과 벽의 마감을 완성하고, 오랫동안 닫혀 있던 건물을 일반에 개방해 쓰임새를 재정의했다. 건축물이 가진 역사적, 사회적 맥락(context)을 존중하고, 공공성을 중시하는 치퍼필드의 태도가 드러나는 작품들이다.
서울의 아모레퍼시픽 사옥도 대표작 중 하나로 언급됐다. 기업의 사옥이지만 로비 등의 공간을 시민들이 쉴 수 있는 장소로 개방한 것이 특징. 이를 통해 “개인과 집단, 사적인 것과 공공적인 것, 일과 휴식이 조화를 이루도록 했으며 공존과 교감의 기회를 사회에 부여했다”는 평가다.
치퍼필드는 “건축의 본질과 의미뿐 아니라 기후변화나 사회적 불평등이라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건축가로서 기여할 수 있는 부분에 계속 관심을 기울이라는 격려의 의미로 받아들인다”는 수상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