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마, 음악… 최근 몇 년 동안 이어진 ‘K컬처’에 대한 세계적 관심은 공예도 예외가 아니다. 7월 스페인 명품 패션 브랜드 ‘로에베’ 주최 공예상에서 말 꼬리털을 사용해 작품을 만드는 작가 정다혜(33)가 전 세계 약 3100대1 경쟁을 뚫고 우승을 차지하더니, 11월엔 덴마크 가구 브랜드 ‘프리츠 한센’, 그리고 스코틀랜드 위스키 브랜드 ‘발베니’가 한국 공예 장인들과 협업해 각각 서울에서 전시를 열었다.
프랑스 명품 패션 브랜드 ‘샤넬’은 한국 공예의 아름다움에 주목해 아예 한국 공예가 지원에 나섰다. 한국의 문화유산을 계승하기 위해 2014년부터 매해 ‘올해의 장인’과 ‘올해의 젊은 공예인’을 선정해 온 재단법인 예올(이사장 김영명)을 올해부터 5년간 후원하기로 한 것이다. 이 기간 동안 샤넬은 예올이 선정하는 공예가들과 함께 프로젝트 전시를 개최한다.
해외 브랜드들이 빠진 한국 공예의 매력은 무엇일까. 올해의 장인과 젊은 공예인으로 선정돼 샤넬과 함께 전시를 준비한 박수영(54) 금박장(金箔匠∙국가무형문화재 제119호, 금박장 이수자)과 옻칠 공예가 유남권(35) 작가를 만나 10일 그 이유를 물었다. 박 장인은 금으로 칠한 모빌 공예품과 복주머니 등을, 유남권 작가는 의자, 수납장 등의 기물을 옻칠로 마감하는 전통 기법 ‘지태칠기(紙胎漆器)’를 활용한 작품들을 전시 중이다.
“최근 한국 문화가 세계적으로 관심을 얻다 보니, 한국의 장인정신까지 궁금해하더라고요.” 박 장인은 남편 김기호 금박장과 함께 북촌에 위치한 공방 ‘금박연’에서 25년째 작품을 만들어오고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관심은 처음. 평소 그의 공방을 찾는 손님 중 절반 이상이 외국인일 정도다. “국내에서도 일상적 물건의 디자인에 아름다움을 느끼고, 공예가들의 손맛과 철학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껴요. ‘삶의 품격’이 전반적으로 올라갔다는 생각이 들죠.”
두 공예가는 한국 전통 공예의 아름다움을 ‘현대와의 조화’와 ‘편안함’으로 설명했다. 유 작가는 동양화를 전공하고, 전북 남원 지역에서 활동하는 무형문화재 박강용 장인을 찾아가 옻칠 공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한국 공예 작품을 보면, 주변 국가들보다 ‘공예의 현대화’가 잘되고 있는 것 같아요. 일본의 경우엔 전통 공예의 기술과 디자인을 계승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우리는 전통 공예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들을 많이 내놓고 있죠. 남원 같은 경우 소반, 목기 등의 전통 공예품에 현대 디자인에서 쓰는 모양과 선(線)을 결합하는 작업을 많이 하고 있어요.”(유남권) ‘대칭’에 대한 강박이 없다는 점도 한국 공예의 특징. “화려한 일본∙중국 공예에 비해 초라한 느낌이 든다는 사람도 있어요. 우리 공예는 산수(山水)처럼 불규칙적이더라도 자연스러운 디테일을 추구하고 있는데, 그런 요소가 오히려 외국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않았나 해요. 수준이 아니라 미감(美感)의 차이인 거죠.”(박수영)
작년 개관한 ‘서울공예박물관’에 지금까지 약 50만명의 관람객이 찾아왔을 정도로 어느 때보다 공예의 인기가 높다. 하지만 풀어야 할 숙제도 산적해 있다. 공예를 예술 작품, 혹은 사치품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남아 있는 것. “공예 작가들이 조금 더 친절하게 설명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작품은 귀하게 모시는 것이 아니라 잘 사용해야 의미가 있다’고, ‘고장이 나도 고쳐줄 수 있다’고요. 그래야 공예품의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더 늘어난다고 생각합니다.”(유남권) “사실 공예가들은 하던 일을 계속 하고 있었죠. 외국 브랜드들의 인정을 받아 우리 공예가 다시 주목받는 것도 좋지만, 앞으로는 공예가들이 먼저 아름다움과 실용적 물건을 결합해 알리는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해요. 공예는 박물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박수영)
16일까지 서울 북촌 ‘예올 북촌가’에서 진행되는 이번 전시엔 인터뷰 중간중간 관람객들이 끊임없이 들어차 공예가들은 작품 설명을 위해 일찍 자리를 떠야 했다. “제가 옻칠 공예를 시작할 때인 2000년대 중반만 해도 공예에 대한 관심이 많지 않았고, 관련 학과들은 없어지는 추세였어요. 선대 공예가들이 축적했던 것이 만개한 것을 저희가 잘 받아서 다듬어야죠.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이 정말 맞는 것 같아요. 하하.”(유남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