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20일 스웨덴 서쪽의 항구도시 헬싱보리 외곽에 있는 드로트닝회그 지역. 이민자가 밀집한 우범지대로 악명 높은 곳이다. 이곳에 들어서자 세계 최대 스웨덴 가구 회사 이케아(IKEA)가 지난달 설치한 800㎡ 대형 천막집이 나타났다. 이름은 DM. ‘Do More(더 하자)’의 준말이다. 마켓, 도시 농장, 카페, 일터 기능을 합친 일종의 ‘지역사회 실험실’이다.
“지역 주민을 연결할 수 있는 ‘집 밖의 집’을 모색했어요. 난민이 여기서 일자리를 구하고, 텃밭에서 딴 채소로 만든 샌드위치를 팔아요. 특히 ‘음식’을 중요한 연결 고리로 봤답니다.” 안나-카린 알데린 이케아 DM 프로젝트 리더가 말했다.
#2. 헬싱보리 서쪽, 바다 건너 덴마크 땅이 보이는 해안가의 오래된 창고를 개조한 ‘마가신 405(Magasin 405)’ 건물. “첫 집을 떠올려 보세요. 반짝이는 미래가 펼쳐질 것 같지만 현실은 침대 하나 두면 꽉 차는 손바닥만 한 집 아니었나요? 침대가 먹고 자고 놀고 공부하는 공간이죠. 앞으로 집값이 상승하면 침대 의존증은 더 커질지 몰라요(웃음).” 1인 가구의 장밋빛 이상과 비루한 현실을 대비한 대형 디스코 볼 모양 침대 집 앞에서 마르쿠스 엥만 잉카그룹(이케아 리테일 담당 회사)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CCO)가 말했다.
이케아는 ‘집에서의 생활(Life at home)’이란 주제로 생애 주기에 따른 집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으로 창고 전체를 탈바꿈했다. 네 벽으로 둘러싸인 전통적 집에서 벗어난 미래 주택들이었다.
두 장면은 헬싱보리에서 지난달 30일 시작한 도시 엑스포 ‘H22′(7월 3일까지)에서 이뤄지고 있는 이케아의 실험이다. H22는 헬싱보리 시(市)가 ‘지속 가능한 미래 도시’를 모색하기 위해 개최한 박람회로 1955년 ‘H55′, 1999년 ‘H99′에 이어 세 번째로 열렸다. 지난 H55에선 주택의 중심이라는 현대적 개념의 거실이 처음 제시됐을 정도로 규모는 작지만 의미 있는 행사다.
헬싱보리는 엘룸훌트(이케아가 시작한 마을), 말뫼와 함께 이케아의 스웨덴 내 3대 거점 도시 중 하나. 그간 ‘Democratic Design(민주적 디자인)’을 기업 철학으로 삼아 디자인·기능·품질·지속가능성·낮은 가격의 5가지 요소를 갖춘 제품을 생산하는 데 주력해온 이케아가 이번 엑스포를 통해 꺼낸 키워드는 ‘함께하기(togetherness)’였다.
최근 온라인을 강타한 ‘스웨덴게이트’ 논란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스웨덴게이트는 지난달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서 시작된 밈. “스웨덴 사람은 손님에게 밥을 대접하지 않고 식구들만 먹는다”는 체험담에서 시작해 스웨덴의 극단적 개인주의를 조롱하는 밈으로 확산했다.
“저도 어렸을 땐 그런 경험이 있지만 이젠 아니랍니다. 집마다 다르고요(웃음).” 멋쩍은 듯 웃던 마르쿠스 엥만 CCO가 말했다. “팬데믹으로 지난 2년 동안 컴퓨터 앞에서만 앉아 있으면서 친구,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어요. 이제 집(home)은 물리적인 집을 넘어서 ‘지역’으로 확장한 개념이 됐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천막집 ‘DM’은 음식과 커뮤니티를 화두 삼아 지역 속으로 들어간 시도이고, ‘마가신 405′는 디자인을 구심점으로 지역 주민과 함께 도시를 생각하는 장을 만든 것이다.
이케아 창업자 잉바르 캄프라드(1926~2018)는 1976년 ‘어느 가구상의 증언’에서 자신의 비전은 “많은 사람을 위해 더 나은 일상생활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웨덴의 작은 도시 헬싱보리는 코로나가 지나간 자리, 더 많은 사람의 더 나은 일상을 창조하기 위해 필요한 강력접착제는 ‘함께하기’임을 보여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