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록밴드 롤링스톤스의 '혀와 입술' 로고. 영국 그래픽 디자이너 존 파셰가 대학원 시절 단돈 50파운드에 만든 이 로고는 수천억원의 가치를 지닌 최고의 뮤지션 로고가 됐다./ 유니버설뮤직 코리아

유혹인가 조롱인가. 도톰한 입술 사이로 새빨간 혀를 쭉 내밀었다. 세상에서 가장 바쁜 혓바닥 아닐까. 티셔츠, 라이터, 에코 백, 심지어 은화까지 온갖 제품 위를 활보한다. 음악에 조예가 깊지 않더라도 한 번쯤 봤을 만한 이 도발적인 입은 영국의 전설적 록그룹 롤링스톤스의 로고. 공식 이름은 ‘혀와 입술(Tongue and lips logo)’, 애칭은 ‘뜨거운 입술(Hot Lips)’이다.

조만간 한국 골프장에서 빨간 혀들이 움직일 듯하다. 의류 회사 지비케이리테일은 다음 달 MZ 세대 골퍼를 겨냥, 입술 로고를 새긴 ‘롤링스톤스 골프웨어’를 출시한다고 밝혔다.

롤링스톤스 혀와 입술 로고가 인쇄된 골프공. 2015년 골프용품 브랜드 타이틀리스트 미국 본사에서 한정판으로 나온 제품이다. /유니버설뮤직 코리아

‘혀와 입술’은 단순한 로고를 넘어 디자인사(史)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뮤지션이 기업 로고인 CI(Corporate Identity) 개념을 처음 도입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로고란 주인에게 복무하는 존재지만 빨간 혀는 주객전도된 사례. 그 자체로 20세기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이다. 2년 전 영국 유명 디자인 매체 ‘크리에이티브 리뷰’에서 IT 회사 애플의 사과, 펭귄 북스의 펭귄, 미쉐린 타이어의 캐릭터 ‘비벤덤’ 등과 함께 역사상 최고의 로고 톱 20 에 포함하기도 했다. 유니버설뮤직 코리아 이인섭 부사장은 “롤링스톤스는 전설의 밴드를 넘어 한 해 평균 매출 3300억원 정도를 올리는 대기업이나 다름없다. 수익의 상당 부분이 로고에서 기인한다”고 했다.

혓바닥의 나이는 올해로 52세. 1970년 탄생했다. 그해 롤링스톤스 리더 믹 재거는 참신한 디자이너를 구하기 위해 런던 RCA(왕립예술학교) 졸업 전시회를 찾았다. 그곳에서 그래픽 디자인 전공 대학원생 존 파셰(John Pasche·77)를 만나 공연 포스터와 밴드 로고를 부탁했다. 디자인비는 단돈 50파운드(약 8만원)였다.

혀와 입술 로고가 공식 등장한 롤링스톤스의 1971년 발매 앨범 'Sticky Fingers'. 앤디 워홀이 지퍼를 달아 디자인한 커버(왼쪽)로 유명한 이 앨범 속지(오른쪽) 곳곳에 혀와 입술 로고가 찍혔다.

로고가 공식 사용된 것은 1971년 발매된 롤링스톤스 앨범 ‘Sticky Fingers’였다. 지퍼를 붙여 만든 커버로 외설 논란에 휩싸이기도 한 이 앨범 속지 곳곳에 빨간 혀가 찍혔다. 앨범 재킷 디자이너는 팝아트 거장 앤디 워홀. 그의 명성이 워낙 높아 로고도 워홀 작품으로 오해하는 이가 많았지만 엄연히 파셰의 창작물이었다.

누구 혓바닥일까. 2008년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파셰는 이렇게 회고했다. “당시 인도 문화에 심취했던 재거는 힌두 여신 ‘칼리’ 사진을 보여줬다. 입을 벌려 혀를 늘어뜨린 모습이었는데 그렇게 그리고 싶지 않았다. 대신 믹 재거를 처음 봤을 때 커다란 입과 입술부터 눈에 들어온 기억이 났다.” 믹 재거는 석유회사 ‘셸(Shell)’의 조개 모양 로고같이 독립적으로도 쓸 수 있는 디자인을 부탁했다.

'혀와 입술' 로고가 찍힌 티셔츠를 입은 롤링스톤스 리더 믹 재거.

빨간 혀는 최초, 최고의 뮤지션 로고가 됐지만 파셰는 그만큼 돈방석에 앉지 못했다. 저작권 개념이 불분명하던 시절이라 1980년대 중반 2만6000파운드(약 4200만원)에 저작권을 롤링스톤스에 몽땅 넘겼다. 현재 로고 추산 가치가 수천억원에 이르는 것에 비해선 미미한 금액이다. 노년의 파셰는 이제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혀 그림을 그려 판다. 장당 2100파운드(약 340만원). 한쪽 팔뚝에 빨간 혀를 문신한 채!

롤링스톤스 로고를 만든 영국 그래픽 디자이너 존 파셰./ rollingstoneslog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