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일본 도쿄 시부야구 나베시마 쇼토 공원에 오밀조밀한 나무 오두막 5채가 들어섰다. 겉으로 봐서는 용도를 짐작하기 어려운 이 건물의 정체는 화장실.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을 설계한 건축가 구마 겐고가 장기인 목재를 사용해 디자인했다. 공원의 공중 화장실이란 으슥한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 있기 마련이지만 이 화장실은 나무라는 재료가 주변의 숲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도쿄 시부야구 나베시마 쇼토 공원에 건축가 쿠마 겐고가 설계한 화장실. 주위 숲과 어우러지는 나무를 외장재로 쓰고 '숲의 오솔길'이라는 제목처럼 화장실을 기능에 따라 5채로 나눴다. /Photo: Satoshi Nagare, courtesy of the Nippon Foundation

화장실은 보통 하나의 건물에 남성·여성용, 장애인용 등 2~3개의 입구를 둔다. 이곳은 기능에 따라 건물을 5채로 나눴다. 소변기만 있는 남자용 화장실, 소변기·좌변기가 다 있는 남녀공용 화장실, 유아용 화장실…. ‘다목적 화장실’에는 장애인은 물론 체내에 관을 연결해 배설물을 배출하는 환자들을 위한 전용 설비까지 갖췄다. ‘화장실 마을’을 지나는 오솔길은 공원의 산책로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 작품은 일본재단(Nippon Foundation)이 시부야구와 함께 추진하는 ‘도쿄 화장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어졌다. 건축가·디자이너 16명이 시부야 지역 공중 화장실 17곳을 디자인하는 프로젝트다. 참여 디자이너 가운데 안도 다다오, 반 시게루, 마키 후미히코, 이토 도요까지 ‘건축 노벨상’ 프리츠커상 수상자만 4명이다. 이 외에 구마 겐고, 소우 후지모토 같은 일본의 스타 건축가부터 애플 출신 산업디자이너 마크 뉴슨까지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총출동했다.

도쿄 화장실 프로젝트는 지난해 반 시게루가 ‘투명 화장실’을 지으면서 크게 화제가 됐다. 특수 소재를 사용한 화장실은 평소엔 투명하지만 안에 사람이 들어가 문을 잠그면 불투명하게 변한다. 안에 누군가 있는지 밖에서는 알 수 없어 공원 화장실에 들어가기를 꺼렸던 사람들을 위해 화장실 전체를 투명하게 만든 파격적 발상이다.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반 시게루가 설계한 화장실. 사용자가 안에서 문을 잠그면 투명한 벽이 불투명하게 바뀐다. /Photo: Satoshi Nagare, courtesy of the Nippon Foundation


안도 다다오는 금속 루버(널빤지 창살)로 벽을 세운 화장실을 선보였다. 촘촘하게 배치된 루버가 필터 역할을 하면서 외부의 빛과 바람을 적당히 걸러 안으로 들인다. 건축가 사카쿠라 다케노스케는 전통 등잔처럼 은은하게 공원을 밝히는 화장실을 만들었다. 마키 후미히코가 디자인한 화장실은 벤치 등 휴식 시설을 갖췄다. 문어 모양 미끄럼틀이 있어 ‘문어 공원’으로 불리는 장소에 들어선 이 화장실의 별명은 ‘오징어 화장실’. 빨간 문어 미끄럼틀과 흰색 화장실 사이의 시각적 연결성은 직설적이지 않지만, 둘은 묘하게 닮았다.

안도 다다오의 화장실(왼쪽)은 촘촘하게 배치한 루버(널빤지 창살)가 필터 역할을 하며 외부의 공기와 빛을 끌어들인다. 공원에 설치된 마키 후미히코의 '오징어 화장실'은 빨간색 문어 미끄럼틀과 묘하게 어울린다. /Photo: Satoshi Nagare, courtesy of the Nippon Foundation

일본재단이 지난달 17~19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0% 이상이 외출할 때 공중 화장실을 이용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들이 이용하는 화장실을 위치별로 보면 ‘백화점이나 극장 같은 상업시설’이 57%로 가장 높았고 ‘공원이나 거리’는 14%로 최하위였다. 공원이나 거리에 있는 공중 화장실은 상대적으로 더럽고, 냄새나고, 어둡고, 안전하지 않다는 이미지를 가진 것으로 조사됐다. 일본재단측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거리·공원의 공공 화장실에 대한 인식이 바뀔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