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가는 길에 주소 확인차 ‘통의동 막집’을 검색하자 포털사이트는 친절하게도 통의동 맛집 목록을 찾아 보여줬다. 그러나 분명 이 집은 막집이다. 막걸리, 막사발처럼 거친 듯 소박한 미감으로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경복궁 옆 110년 된 한옥을 매입해 올해 초 문화 공간으로 바꾼 이는 건축가 조병수(64). 박서보 화백 자택 겸 갤러리 ‘기지’, 황인용 아나운서의 음악 감상실 ‘카메라타’ 등으로 유명한 건축가다.
막집이라는 당호(堂號)는 조병수가 막의 미(美)라고 불러 온 한국적 미감과 연결된다. 최근 이곳에서 만난 조병수는 “막의 미는 우리 문화의 즉흥적이고 흥겨우면서도 감각적인 면을 보여주는 한국적 자연스러움”이라고 했다.
지나던 사람들이 이따금 대문을 열고 들어와 사진을 찍고 갔다. 기와 지붕 아래 벽은 온통 투명한 외관부터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한때 식당으로 쓰였던 이 집은 육중한 시멘트 담장으로 정면이 가로막혀 있었다. 이것을 걷어내고 유리처럼 투명한 강화 플라스틱을 집의 외피로 입혔다. 조병수는 “워낙 집이 막혀 있었으니 투명하게 보여주려고 한 것”이라고 했다.
안에 들어서면 양옥이 한옥과 마당을 공유하며 마주 본다. 두 채 모두 오랜 세월에 벗겨지고 떨어지고 깨진 곳이 그대로 드러나 미완성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창문 대신 쳐 놓은 비닐. “집이 오래돼서 기둥이 조금씩 기울어졌어요. 이걸 다 해체해 다시 세우면서 목재가 상한 곳에 새 나무를 쓰면 원형이 많이 훼손됩니다. 그래서 그냥 뒀는데 기울어진 기둥 사이에 벽을 채울 순 없으니 우선 비닐을 쓴 거죠.”
지금 막집에서는 한국건축가협회상 2020년 수상작품전(25일까지)이 열리고 있다. 지난달엔 첼리스트 양성원이 연주회를 열었다. 조병수는 “전시, 공연, 심포지엄처럼 여러 활동을 넘나드는 장소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의 다른 작품에서도 ‘막의 미’가 드러난다. 경기 양평의 주택 ‘ㅁ자집’에선 기둥을 무작위적인 간격으로 배치했다. “부석사 같은 고건축 배치를 보면 건물들이 조금씩 어긋나 있어요. 모든 것이 정확히 맞아떨어지지 않아도 좋다는 자유로움이 배어 있죠.” 거제도 펜션 ‘지평집’ 콘크리트 벽의 갈라지고 패인 틈에선 풀이 자란다.
젊은 시절부터 막사발에 빠졌다. “왠지 만만하고, 완벽하지 않아서 쓰다 좀 깨도 혼나지 않을 것만 같은 그런 맛이 있죠.” 이런 한국미는 세계 무대에서 때로 오해의 대상이 된다. “한국적 미를 일본의 와비사비(간소하고 한가한 정취)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와비사비는 극도로 정제되고 균형 잡힌 이후의 파격에서 오고, 막의 미는 조금 덜 완성된 듯한 상태로 남겨지는 데서 오는 편안함과 여유로움을 아우르니 전혀 다르죠.”
‘막의 미’를 전파하는 데도 열심이다. 2018년 영국 건축 잡지 ‘아키텍처럴 리뷰’에 ‘막과 비움(Mak and Bium)’을 주제로 기고를 발표했다. 그 글에 공감한 세계적 건축사진가 헬렌 비네트의 요청으로 종묘·소쇄원·병산서원을 담은 비네트의 사진집에 서문을 썼다. 건축역사가 케네스 프램튼과도 교유했다. ‘막과 비움’이 각국 대학의 건축사(史) 교과서로 쓰이는 프램튼의 저서 최신판에 지난해 언급됐다. 조병수는 “와비사비에 대해 영어로 쓰인 책만 족히 백 권은 될 텐데 막의 미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면서 “앞으로 책도 내고, 막의 미를 정리해 세계에 알릴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