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난간, 바위, 축대가 이렇게 예쁜 옷가게가 되었다." 삼청동 거리의 옷가게를 묘사한 그림에 함성호는 이런 단상을 적었다. 도시의 스케일이 급격히 작아지고 모든 것이 아기자기해지는 곳이 삼청동이다. /함성호 그림·페이퍼로드 제공

‘사라진 서울을 걷다’(페이퍼로드)는 시(詩)와 시(市)에 대한 책이다. 사라졌거나 사라져 가는 서울 풍경을 문학이라는 거울에 비춰 돌아본다. 산업화 시대 동대문이 신동엽의 ‘종로 오가’와, 소비 문화의 거리 압구정은 유하의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와 맞물린다. 도시의 스케일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삼청동에서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땐 조선시대 시인 이달(1539~1612)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니 시 쓰는 건축가로서 함성호(58)는 지난달 나온 이 책의 가장 알맞은 저자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일산 자택에서 만난 함성호는 “문학은 도시를 새롭게 보기 위한 수단”이라고 했다. 도시를 가꾸려면 우선 찬찬히 들여다봐야 한다. 장소에 대해 알아야 애정이 생기고 함부로 헐거나 없애지 못한다. 그러려면 단서가 필요한데 우리가 손때를 지우는 데만 열을 올리는 사이 도시의 구석구석을 돌아볼 단서는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이 대목에서 그는 ‘기도하지 않는 한국인’을 이야기했다.

“동아시아 다른 나라와 구별되는 한국인의 특징이 기도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중국인은 도관(道觀·도교 사원)에서, 일본인은 신사에서 기도하는데 우리는 생활 속에서 기도하지 않지요. 오랜 신화와 기도가 사라졌다는 것은 과거와 단절됐다는 뜻입니다. 그런 우리가 이 땅의 이야기를 돌아보는 수단으로 문학을 생각했지요.”

더 나은 도시를 만들겠다며 전국에서 ‘걷고 싶은 거리’를 조성하고 ‘도시 재생’을 추진한다. 대부분 성공적이지 못하다고 본다. 껍데기는 있는데 거기서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갈지에 대한 고민은 없기 때문이다. 건축적으로 말하면 프로그램(공간 활용 계획)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이유로 그는 “서양에서 배운 건축 관념이 우리 현실과 연결되지 않는 점”을 들었다. 그러면서 광화문광장 조성 당시 참석했던 회의 장면을 예로 들었다.

“누군가 나무 그늘이 필요하지 않겠냐고 하니까 외국에서 공부한 다른 건축가가 경멸하듯 ‘그게 광장이냐’고 하더군요. 유럽과 달라서 우리나라 여름은 그늘 없이 견디기 어렵잖아요. 서양식 광장을 그늘 있는 광장으로 바꿔도 되는데, 사람들을 위해 뜨거운 햇빛을 가려 줄 생각을 않는 거죠.” 외국에서 배운 것을 그대로 적용하려다 보니 사용자를 배려하지 않는 공간이 된다는 것이다.

건축이 공간의 이야기를 지나치게 규정하는 것도 문제다. 그는 지금의 광화문광장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넣었다”고 했다. “동상을 세우고, 지하에 전시장을 만들고…. 건축은 이야기가 생겨날 토대를 만들어주면 되는데 너무 확고해요. 새로 조성되는 광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건축적 장치 위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생겨나는 곳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도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지만 지난날을 하염없이 그리워하지도, 오늘의 도시에 냉소하지도 않는다. 이를테면 청계천. 착공 2년여 만에 ‘복원’된 청계천을 보며 “건축 비평하는 입장에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복원 계획이 나왔을 때 반대 운동을 했고, 완성된 뒤엔 어항이라고 조롱도 했는데 어느 날 보니 사람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대체 나는 무엇을, 왜 비판했나 싶었죠.”

이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고 비판만 할 게 아니라 현실은 현실로 인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는 “도시를 부정할 게 아니라, 오늘의 도시를 껴안아야 한다”고 했다. 사라져 간 도시의 풍경은 돌아오지 않으며 우리는 지금의 도시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